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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청도설] 관세폭탄 부산신발
작성일 2025-04-12 조회수 40
[도청도설] 관세폭탄 부산신발

2025-04-12 40


[도청도설] 관세폭탄 부산신발 

 

 

한때 '부산신발을 모르면 간첩'이라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나라 신발산업 100여 년 역사 중심에 부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신발산업은 1912년 '고무신'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부산은 일본 신발산업의 중심지인 고베와 가까운 지정학적 이점을 자연스럽게 활용했다. 고무신 만드는 원료 확보가 쉬워 1921년 선만고무 등 회사가 설립돼 고무신 제조업이 싹텄다. 1949년엔 신발공장만 70개에 달했다.


 

 




한국전쟁 후 피란민 등 풍부한 노동력을 발판 삼아 부산신발은 부산진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룬다. 국제상사(범일동) 삼화고무(범천동) 진양고무(부암동) 동양고무(당감동) 태화고무(가야동) 대양고무·보생고무(전포동) 등이 말표 왕자표 기차표 범표 등 유명 브랜드 신발을 만들었다. 1960년대 가황공정(고무에 황 첨가)이 가능해지고, 일본과 기술제휴로 품질도 높아지면서 부산신발은 한국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시쳇말로 한 집 걸러 한 집 사람이 신발회사에서 일한다고 할 정도였던 1990년엔 부산에 1123개 신발 관련 업체가 있었다(현재는 전국 1433개 업체 가운데 부산에 17.6%인 253개 사가 있다). 부산진구에는 지금도 한국신발피혁연구원과 한국신발관 등 신발 관련 기관이 많고, 진양사거리 일대에는 '황금신발 테마거리'가 조성돼 부산신발의 발전사를 조명한다.

그러나 한국 신발산업의 메카인 부산 위상은 1990년대 이후 흔들렸다. 글로벌 브랜드가 토종 브랜드 자리를 꿰차고, 인건비까지 오르자 부산(경남) 신발기업은 생산 거점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로 이전했다. 당시 이곳 인건비는 국내의 10분의 1에서 20분의 1 수준이었다. 해외로 공장을 옮긴 대표 신발업체인 TKG태광(옛 태광실업·김해) 화승그룹(화승인더스트리 화승엔터프라이즈·부산) 창신INC(부산)는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나이키 아디다스 등을 개발·생산하는 '국내 빅3 신발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로 탈바꿈하면서 제2의 신발 전성기를 맞았다.

해외 생산기지를 통해 20년 이상 왕좌를 지켜온 이들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터트린 관세폭탄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주요 신발 생산기지인 베트남 관세는 46%, 중국은 기존 관세 20%에 34%를 더한 총 54%, 인도네시아는 34% 등이다. 실제 관세 부과 땐 비싼 가격 탓에 소비 감소에 따른 생산량 급감이 불가피하다. 그간 위기를 기회로 삼았던 기업들인 만큼 살인적 관세 부과 후폭풍을 현명하게 이겨내길 바란다.

임은정 편집국 부국장 

 


[2025-04-08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