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신발로 꽃을 만든 남자』 – 40년 신발 인생, 그 모든 걸음에 꽃이 피다
[리뷰] 『신발로 꽃을 만든 남자』 – 40년 신발 인생, 그 모든 걸음에 꽃이 피다하용호 지음 | 2025년 출간 “살아온 인연들 모두가 신발로 연결되는 남자,경험하고 배우고 느꼈던 전부가 신발을 위해서였던 남자,신발이 맺어준 마라톤을 몸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남자…”표지에 적힌 이 문장은 『신발로 꽃을 만든 남자』라는 책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책은 단순한 신발 디자이너의 회고록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가 평생을 바쳐온 ‘신발’이라는 세계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통찰하는 이야기다. 저자 하용호는 1957년 일본 가나가와 출생 후 한국으로 이주해 경남 창녕과 부산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고교 시절 광고디자인 회사에서 겪은 사건을 계기로 디자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국내 대표 신발 브랜드 PROSPECS(프로스펙스)의 연구개발 부서에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 경기화 개발에도 참여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한 청년의 분노가 만든 신념의 시작 1980년대 초, 소속된 신발 회사는 거대한 기업집단의 해운대 호텔 기공식에 참석한다. 추운 날, 새벽부터 도열된 직원들은 바닷가 백사장에 무작정 서 있었고, 예정된 주요 인사는 시간에 맞춰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바람을 맞으며 기다려야 했다. 행사 후 돌아가는 회사 버스에서는 직원들이 녹초가 되어 잠들었지만, 그 젊은이는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그의 가슴속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뇄다.“사주는 이렇게 직원들을 고생시켜도 되나?”“오너가 되면 이렇게 직원들을 마음대로 하는구나. 나도 꼭 오너가 되어 봐야지.”그 청년은 바로 이 책의 저자, 하용호다. 그날의 경험은 단지 추억이 아닌, 그의 뿌리가 되었고, 오너십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형성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조직의 '공중분해' 속에서 배운 것『신발로 꽃을 만든 남자』의 3부 「신발로 밥 먹고 살기 – 족쟁이 인생」에는 프로스펙스 시절의 경험과 함께 당시 중견 그룹이 겪은 해체, 공중분해의 과정이 담겨 있다. 내부 갈등과 오너의 판단이 불러온 붕괴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극심한 불안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하용호는 이 상황을 단순한 좌절로 치부하지 않았다.그는 되묻는다.“기업은 절대 망하게 해서는 되지 않겠구나.”“정리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가?”경영자가 되기 이전부터 그는 조직 구성원 모두가 존중받는 기업, 신뢰와 배려가 흐르는 구조를 상상했고, 훗날 하백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며 그 철학을 현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글로벌 신발 기술을 품고, 한국형 브랜드를 꽃피우다 ASICS와의 협업, 일본 공장과의 기술 교류, 미국 시장 조사 등을 거치며 세계적인 신발 트렌드와 기술을 흡수한 그는, 1997년 신발디자인 전문회사 하백디자인연구소를 창립했다. 스포츠화, 아웃도어화, 기능성 신발 등 국내외 다양한 브랜드의 신발 디자인, 개발, 생산자문을 수행하며 40여 건 이상의 지적재산권을 보유한 저자는 2019년에는 자신만의 브랜드 ‘꼬맘슈(Kkomomshoe)’를 론칭하기도 했다. 마라톤화에 담은 철학, 사람을 위한 신발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 중 하나는, 저자가 마라톤을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수행(修行)’의 일환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는 국내외 57회의 풀코스를 완주했으며,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뛰며 신발을 설계하고 개발했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 유튜브 채널 ‘마라톤 수행’까지 운영하게 된다.그에게 신발이란 발을 보호하는 물건을 넘어서, 한 사람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존재다. 이 책에서는 ‘글이 되는 마라톤’, ‘뛰면서 다가오는 풍경들’, ‘달리면서 만든 인생관’ 등 제목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챕터들이 그 철학을 잘 보여준다. 신발로 이어진 교육자의 길, 그리고 2500명의 제자하용호 대표는 신발 산업에 몸담은 디자이너로만 그치지 않았다. 26년간 경남정보대학교 신발패션산업과 교수로 재직하며 2,500명 이상의 제자를 양성했고, 산업 현장과 연결된 실용 교육을 통해 지역과 국가 신발 산업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의 교육 철학은 실용성과 창의성, 인성과 기술의 균형을 중시하며, 이 책의 마지막 부인 ‘가르침의 즐거움’에서 잘 드러난다.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교육의 한계를 통찰한 내용,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내 것이 아니라는 자기성찰, 신발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저자는 교육자이자 실천가로서의 모습도 책에 오롯이 담아냈다. 신발을 넘어, 사람을 디자인하는 여정『신발로 꽃을 만든 남자』는 신발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사람의 삶, 인연, 직업정체성, 교육, 철학을 유기적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그는 인생의 좌절과 실패를 두려움 없이 마주하고,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더 좋은 디자인을 위한 밑거름이었다고 고백한다.2025년 봄, AI와 신발 디자인의 융합을 새로운 도전으로 삼겠다는 저자의 다짐은, 여전히 성장하고 진화하는 디자이너의 자세를 보여준다. 책은 회고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 삶의 ‘꽃’은 어디에서 피우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사진출처 : Unsplash의Alexa Soh] 『신발로 꽃을 만든 남자』는 결국, 신발을 통해 삶의 ‘의미’를 짓는 이야기다.발끝에서 시작된 작은 디자인이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으로 꽃피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단지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기획 : 이일형지오힐 대표/경남정보대학교 신발패션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