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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족마저 떠난 실직자, ‘이것’ 한방에 인생역전...집에 하나씩 있는 못난이 신발의 탄생 이야기 [추동훈
작성일 2025-07-01 조회수 14
가족마저 떠난 실직자, ‘이것’ 한방에 인생역전...집에 하나씩 있는 못난이 신발의 탄생 이야기 [추동훈

2025-07-01 14


가족마저 떠난 실직자, ‘이것’ 한방에 인생역전...집에 하나씩 있는 못난이 신발의 탄생 이야기 [추동훈  

 

 

[흥부전-110][프로토타입-08]크록스기

[프로토타입]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들은 프로토타입을 거쳐 완성됩니다. 시제품 또는 초기모델을 뜻하는 ‘프로토타입’ 시리즈는 모든 것의 탄생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 돈 3명의 남자의 즉흥적 결단

카리브해 위, 요트 ‘한니발’이 바람을 가르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2002년 여름, 40대에 접어들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세 친구가 요트 위에 모여 있었다. 나이도, 경력도 다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함께해온 죽마고우들. 조지 보데커, 스캇 시먼스, 린든 ‘듀크’ 핸슨. 그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깐 숨을 돌리는 중이었다.


 

 



크록스 공동창업자,.스캇 시먼스(왼쪽아래부터 시계방향), 린든 ‘듀크’ 핸슨,조지 보데커.조지는 남들보다 두세 수 앞을 내다보는 직감형 사업가였다. 도미노피자 프랜차이즈 100여 개를 운영한 경험과 퀴즈노스 본사에서의 고위 임원 생활까지 그는 숫자와 이윤에 민감했다. 이익이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스캇은 유능한 발명가이자 공정 기술자. 늘 주머니엔 드라이버나 자가수리용 공구를 넣고 다니며, “이건 왜 이렇게 불편하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감각은 투박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예술에 가까웠다. 수완이 좋던 그는 이미 제품 개발과 여러 커리어를 통해 큰 돈을 번 상태였고 소위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었다. 요트 역시 그의 소유였다.

린든은 마케팅과 세일즈, 브랜드 전략의 달인이었다. MBA를 받고 전자제품 유통과 영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늘 정돈된 말투와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열정이 끓어오르면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직장을 잃고 아내도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간 상황이었다. 그는 집도 없이 친구네 소파에서 잠을 자고 지내던 실직자 상태였다.

못생긴 신발에서 시작한 창업 어벤저스

요트 위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던 세 사람은 문득 스캇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신발 표면엔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고 운동화 같기도 하면서 슬리퍼같기도 한 괴상한 모습이었다 .

친구들은 놀리며 그게 뭐냐고 묻자 스캇은 캐나다에서 사온 보트 슈즈라고 대답했다.


 

 



크록스 로고“물 잘 빠지고 미끄럽지도 않고… 근데 진짜 못생겼지?” 스캇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캐나다 여행 중 퀘백에서 우연히 들른 매장에서 Foam Creations라는 캐나다 회사가 만든 슬리퍼를 신어보고 마음에 들어 사온 것이었다. 수영장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미끄럽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그 구조. 실용성이 좋았고 고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볍고 발에 착 감기는 착용감도 만족스러웠다. 딱 하나 디자인이 문제였다.

가만히 신발을 만지작거리던 판매의 귀재 린든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거, 리브랜딩하면 팔리겠다. 단, 문제는 이 디자인이야. ‘못생김’이라는 약점을 장점으로 바꿔야 돼.”

농담에서 시작한 창업, 대히트가 되다

농담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급반전하자 조지 역시 잠깐 말이 없었다. 슬리퍼를 벗어 자세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걸 사업화하자. 우리 스타일로. 대신… 나는 진짜로 숫자가 나와야 해.”

세 사람은 돌아오자마자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스캇은 발뒤꿈치에 스트랩을 추가해 신발의 안정성을 높였다. 뚫린 구멍의 크기와 각도, 갯수를 조절했고 신발의 측면에도 구멍을 내기로 디자인을 개선했다. 조지는 스캇이 신었던 신발을 수소문해 이를 만든 캐나다 Foam Creations와 접촉했다. 해당 신발은 ‘Croslite’(크로슬라이트)라는 셀 폴리머 소재로 만들어진 기능성 신발이었다. 해당 소재는 통풍에 유리했고 냄새를 흡수하지 않아 좋았다. 실제 1년전 캐나다에서 출시됐지만 그렇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최초의 크록스 ‘beach’그는 독점 소재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곧이어 회사를 아예 인수해 버린다. 그리고 대량생산을 위한 제조공법 연구를 통해 사출성형 공정으로 생산 단가를 낮추고 짧은 시간에 수많은 신발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는 바로 첫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바다에서 걱정없이 편하기 신는 신발이라는 뜻에서 ‘Beach’라는 모델명이 붙었다.

2002년 11월, 미국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 보트 쇼에서 해당 신발이 공개됐다. 창업을 결의한지 불과 3달만이었다. 우스꽝스럽다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1000켤레의 신발은 3일만에 완판됐다. 조지는 곧장 두 번째 생산라인 계약서를 들고 캐나다로 날아갔고 린든은 초기 마케팅 캠페인 슬로건을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조지 보데커가 CEO를, 스캇 시먼스가 CTO를, 린든 핸슨이 COO를 맡았다.

이듬해 또다른 전시회에서도 이 못생긴 신발은 다시끔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무엇보다 편안했고 30달러라는 합리적 가격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식당 직원, 병원 의사, 정원사 등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못난이 신발에 큰 호응을 보냈다. 무엇보다 사업을 위한 최상의 멤버를 구축한 이 팀은 금새 여러 거래처를 확보하며 성공적인 사업 확장을 진행했다. 2003년 회사는 7만6000컬레의 신발을 팔아치웠다.

회사의 이름이 된 악어

회사는 그제서야 브랜딩에 나섰다. 회사 이름을 짓자는 고민이 이어졌고 신발의 핵심소재인 크로슬라이트와 악어의 한 종류인 크로커다일에서 회사 이름의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육지와 물속을 자유롭게 오가는 악어의 모습이 회사의 신발과 닮은데다 핵심소재와도 발음이 비슷했다. 그렇게 회사 이름은 ‘크록스(Crocs)’로 정해졌다. 크록스를 대표하는 마스코트의 이름은 실직자던 공동창립자 린든 핸슨의 미들네임 ‘듀크’에서 따왔다. 창업 3년차인 2004년 크록스는 무려 65만켤레의 판매고를 올렸다.


 

 



크록스의 마스코트 듀크박수가 끝나기도 전에 떠난 창업자들

브랜딩과 함께 본사도 플로리다에서 창업자들의 고향인 볼더로 이전했다. 그리고 이들 창업자는 결단을 내린다. 회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창업 불과 3년만에 말이다. 갑작스레 창업한 것처럼 그들은 갑작스레 회사를 떠났다.

세명의 공동창업자가 회사를 떠나며 이를 물려받은 사람은 초기 투자자이기도 했던 론 스나이더다. 그는 실업자 린든 핸슨이 머물던 소파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는 이전에 플렉스트로닉스라는 기업의 부사장 겸 글로벌 사업 총괄을 맡은 바 있었고 컨설팅에도 능했다. 2005년 사장에 취임한 그는 크록스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키웠다. 그는 한해에 600만 켤레의 크록스를 판매하며 1년만에 10배 가량 판매량을 늘렸다. 비치 모델 뿐 아니라 레인부츠, 플립플롭과 같은 다른 신발과 티셔츠, 양말, 선글라스 등 제품군을 대거 확대했다. 그리고 회사는 2006년 상장에도 성공한다. 창업 4년만이다.

또하나의 성공, 지비츠의 탄생

크록스는 ‘Ugly can be beautiful’이란 캠페인을 비롯해 뛰어난 마케팅 역량을 보였다. 실용성과 편안함을 강조해 특유의 뚱뚱하고 못생긴 디자인을 극복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크록스의 인기를 간과했다. 한 몇년만 유행하고 말 것이란 평가절하였다. 그때 새로운 조력자가 등장한다. 바로 지비츠의 탄생이다. 크록스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지비츠를 창업한 세라 슈멜처와 그의 남편그러던 중 세라 슈멜처라는 세아이의 엄마가 아이디어를 냈다. 총 12켤레의 크록스를 갖고있던 대가족의 엄마는 아이들의 크록스에 난 13개의 구멍을 채우기 시작했다. 모조 다이아몬드, 점토, 가짜 꽃으로 꾸며진 크록스는 주변에 소문이 났고 이를 팔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집안에서 수제 작업을 해 판매하던 이 작은 아이템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2005년 8월 이들 부분은 웹사이트를 개설해 본격 판매를 시작했고 특허도 냈다.


 

 



크록스를 꾸민 지비츠들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 10월, 회사는 직원 42명과 월매출 200만 달러를 갖춘 규모있는 회사가 됐다. 그리고 크록스는 이를 2000만 달러에 인수한다. 이는 마치 너무나도 잘 맞는 한쌍의 커플의 탄생이었다. 크록스가 지비츠 유통망을 흡수하며 시너지 효과가 컸다. 그리고 기존 고객과 더불어 아이들이 주요 고객으로 떠올랐다. 수많은 캐릭터와 장난감들이 크록스 위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못생김이 잘생김이 된 순간

그러나 시장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07년 크록스의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폭발적인 성장 뒤 잠깐 쉬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지며 사람들은 돈을 아끼기 시작했다. 크록스의 실적 부진도 본격화됐다. 주가는 곤두박질 쳤고 최고가 대비 90% 이상 하락했다. 그렇게 크록스는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상당기간 부진이 이어진 가운데 2014년 사모펀드 블랙스톤은 크록스 지분 13%를 사들였다.

CEO도 교체됐고 쇄신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사이 독일의 전통있는 샌들 버켄스탁의 유행이 번졌고 비슷한 디자인의 경쟁사와 샌들브랜드의 공세가 강화됐다. 2010년대 중반까지 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크록스에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바로 세계적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케인이 그 주인공. 그는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못생김의 대명사인 크록스를 신고 모델을 런웨이에 세웠다. 그렇게 타기업과의 협업은 그간 못생겼지만 실용적이란 고정관념에 갇혔던 크록스를 멋스럽고 패셔너블한 브랜드로 변신시켰다. 이후 크록스는 발렌시아가, 포스트 말론과 협업해 주류 패션산업의 중심에 섰다.


 

 



발렌시아가와 협업한 크록스 샌들기회가 된 코로나19 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 역시 크록스에겐 큰 힘이 됐다. 집안 생활과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며 갖춰진 옷과 신발 대신 편하고 안락한 물품들이 각광받았다. 크록스도 그랬다. 그리고 의료대란 가운데 크록스는 모든 의료 종사자들에게 크록스를 무료로 한켤레씩 제공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수년간 크록스의 가장 충성도 높은 고객이던 의사와 간호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렇게 크록스는 2024년 기준 41억 달러의 매출과 10억22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매출은 역대 최고, 영업이익은 2023년과 거의 비슷한 최고 수준이었다. 업계서 가장 영업이익률이 높은 기업이 다름아닌 크록스다.


 

 



발렌시아가 크록스한때 ‘못생긴 신발’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크록스. 하지만 이 브랜드는 스스로의 가치를 믿었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편안함을 제공하는 길을 택했다. 단순한 디자인, 가벼운 착용감, 그리고 누구나 신을 수 있는 포용성은 결국 크록스를 패션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렸다.


 

 



세븐일레븐과 협업한 크록스위기의 순간마다 브랜드를 살려낸 결정적인 전략은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었다. 창업자는 더 큰 성공 대신 빠른 2선 후퇴를 택했고 위기의 순간 회사는 협업과 리브랜딩을 통해 젊은 세대와 다시 연결됐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집콕 필수템’으로 각광받으며 실적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크록스는 단순한 신발 브랜드가 아니라, ‘편안함의 아이콘’, ‘개성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났다.

25년만의 폭풍성장, 무기가 된 편안함

이제 크록스는 단지 과거의 성공에 기대지 않는다. 친환경 소재 개발, 글로벌 시장 확대, 디지털 플랫폼 강화 등 미래를 향한 발걸음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마치 크록스를 신은 발걸음처럼,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움직임이다.

“패션은 바뀌지만 편안함은 변하지 않는다.”

실직자에서 전세계 사람들의 발을 편안하게 만든 창업자로 재탄상한 린든 핸슨의 이야기다.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5-06-28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