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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5-14 | 조회수 | 159 |
[칼럼]7억 개의 주문, 폭싹 속았수다 : 지브리피케이션에 대한 고찰
2025-05-14 159
[칼럼]7억 개의 주문, 폭싹 속았수다 : 지브리피케이션에 대한 고찰
1억 3천만 명의 주문자로부터 7억 개의 발주가 들어왔다. 총 생산 소요시간은 일주일. 발주된 상품은 단 한 가지, 지브리 ‘풍’ 이었다.
2025년 3월, OpenAI의 챗GPT-4o에 Image Generation 기능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스튜디오 지브리’ 화풍으로 재구성된 콘텐츠들이 SNS를 집어삼키는데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 ‘미친 한 주’였다던 브래드 라이트캡(Brad Lightcap) 최고운영자의 소회처럼 마치 쓰나미가 몰아치듯 삽시간에 온라인을 휩쓸고 지나갔다.
▲ 지브리 풍으로 생성한 AI 이미지 l 제작도구=OpenAI, ChatGPT-4o l 출처=자체제작
Image Generation 출시 첫 주 챗GPT의 주간 활성 이용자수(WAU)는 5억 명을 넘어섰고, 유료 구독자 역시 450만 명 증가한 2천만 명을 돌파했다. 이전까지 1,550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모으는데 무려 20개월 이상 소요된 것을 감안하면 지브리피케이션(Ghiblification)의 파괴력은 OpenAI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임에 분명했다.
샘 올트먼(Samuel Harris Altman) OpenAI 최고경영자는 Image Generation 출시 이틀 만에 '즐거운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의 GPU는 녹아내리는 중‘이라며 시간당 100만 명씩 증가하는 사용자들에게 지브리 풍 이미지 생성 자제를 종용했다. 그는 ’우리 팀은 이제 그만 자야한다‘고 읍소했지만 24시간 쉬지 않고 7억 장의 이미지를 그려내느라 그야말로 폭싹 속았을 챗GPT는 서버 과부하와 생성 수량 제한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발주를 쳐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무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주는 내 프로필
타사의 이미지 생성 서비스가 있음에도 챗GPT-4o에 지브리를 비롯한 디즈니, 픽사, 심슨가족 등의 인기 있는 작화 스타일 수요가 집중되는 것은 문장을 이미지로 생성해주는 Text-to-Image 모델이 아닌, 사용자가 먼저 자신의 사진을 제시한 후 특정 스타일로 재구성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하는 Image-to-Image 모델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OpenAI는 기존의 확산(Diffusion) 기법이 아닌 자기회귀(Autoregressive) 알고리즘을 활용한 새로운 확산 방식을 채택했다. 사용자가 제시한 원본 이미지에 무작위로 노이즈를 주입해 토큰 단위로 이미지를 분해·훼손시킨 뒤, 이 확산 과정을 역으로 돌려 주입된 노이즈를 제거하면서 요청된 작화 스타일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사용자가 세세한 프롬프팅(Prompting)을 하지 않더라도 입력한 단일 텍스트의 콘텍스트 인식만으로 원본 이미지의 특정 요소를 그대로 살려 정교함과 일관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 (좌) 디즈니 풍으로 생성한 AI 이미지(Text-to-Image) l 제작도구=Google, Gemini 2.0 l 출처=자체제작
▲ (우) 지브리 풍으로 생성한 AI 이미지(Image-to-Image) l 제작도구=OpenAI, ChatGPT-4o l 출처=인도정부 엑스
지브리 풍 이미지에 대한 폭발적 수요는 AI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대중화 및 유료 전환율 증가라는 소기의 성과를 견인했지만, 동시에 지브리피케이션 열풍이 초래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이를 지적하는 사회적 비판이 일고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Carnegie Mellon) 대학교와 인공지능 스타트업 허깅페이스(Hugging Face)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AI 이미지 생성 1,000장당 소요전력은 2.9kWh로, 7억 장의 지브리 풍 이미지 생성에만 무려 2GW를 웃도는 전력이 소모된 것이다. 이는 전기차 40만 대 또는 스마트폰 2천만 대를 동시에 완충할 수 있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이미지 생성 횟수가 늘어날수록 GPU 연산량 증가에 따른 냉각수 사용량 역시 동반 상승한다. MIT 신기후 프로젝트(Climate Project)의 좌장인 엘사 올리베티(Elsa Olivetti) 교수는 AI 데이터 센터 운용에 쓰이는 국가 단위의 전력 소비량과 이에 따른 막대한 양의 냉각용 물 소비가 야기하는 수질 오염, 탄소 배출, 생태계 파괴 등의 환경적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사회적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엄청난 자본과 기술 집약을 통해 고도화시킨 생성형 AI가 효용성 제고 중심으로 활용되기 보다는 SNS 프로필 이미지 생성과 같은 단순한 재미를 위해 다소 허망하고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단기간에 휘발되는 유희적 요소 역시 유의미한 시대 현상 중 하나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생성된 수십억 장의 이미지 중 85~90%가 사용자의 SNS에 조차 올라가지 못한 채 그대로 서버에 남아 허무하게 자원을 소모하는 디지털 폐기물로 버려진다는 부분은 재고의 여지가 충분하다.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
전 세계를 강타한 지브리피케이션 열풍은 창작과 모방의 경계를 넘나들던 생성형 AI의 저작권 문제와 무단 학습 논란을 재점화 시켰다. 일반적으로 기존 작품을 통한 영감이나 작품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들어 특정 작가의 화풍 또는 작화 스타일을 저작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인 법적 해석이다. 따라서 기존 작품에 표현된 특정 구성 또는 장면이 객관적 유사성을 갖지 않을 경우, 스타일이나 아이디어의 단순 모방은 저작권 침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본 문무과학성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밝힘으로써 지브리피케이션을 둘러싼 당사자 간 법적 분쟁이 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윤리적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생성형 AI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화풍을 그대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결국 지브리 전체 작품 스타일에 대한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브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를 동의했을리 만무하다. 이는 원작자의 승인이나 보상이 전제되지 않은 AI의 무단 학습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인지했음에도 의도적으로 학습을 지속하도록 방치한 OpenAI의 비윤리적 접근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가 쌓아온 작가적 정체성은 모방된 7억 개의 SNS 프로필 따위가 침해할 수 있는 예사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논점은 화풍의 오리지널리티, 동의 없이 자행됐을 학습과 모방, 저작권 논쟁과 같은 표층적 분쟁이 아니다. 무엇이든 쉽게 싫증내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를 스스로 휘발시킬 테고 급기야 지브리 풍 이미지가 프로필에 걸려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해당 유저를 촌스럽게 여길 것이다. 문제는 이 허망한 유행이 곧 지나간다 해도 일생을 담아 지향했던 그의 세계관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무참히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온화한 그의 화풍을 그대로 옮겨왔지만 그 수억 장의 이미지 어디에도 ‘자연과의 공존’을 이야기하던 거장의 세계관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지브리의 얼굴로 그려진 전쟁, 재난, 선정적 장면들에서는 소름 돋는 잔인함마저 느껴진다. 위대한 창작자 미야자키 하야오가 느낄 참담함은 이미 무엇으로도 보상받기 어려워졌다.
▲ 지브리 풍으로 생성된 ‘여성과 아이들에게 총을 겨누는 이스라엘 군인’ 이미지 l 출처=이스라엘 방위군 엑스
▲ 조이 로스의 재난소녀(Disaster Girl) 원본 이미지(좌)와 지브리 풍으로 전환된 AI 이미지(우) l 출처=뉴욕 타임즈, 애니메이션 매거진
논란이 커지자 OpenAI는 ‘생존 작가의 화풍으로 요청되는 이미지 생성을 거부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지브리피케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 개인의 화풍이 아닌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체적인 작품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는 석연치 않은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브리 풍으로 생성한 자신의 이미지를 엑스 프로필에 내걸며, ‘지브리 스타일로 이미지를 생성해 보라’고 홍보했던 샘 올트먼이 앞으로 저작권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 믿는 이는 많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챗GPT-4o를 위시한 생성형 AI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지브리를 비롯한 다양한 화풍의 이미지들을 부지런히 그려내고 있다.
‘착취는 착한 일’이라 배우는 아이, AI
1억 3천만 명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태어나 마구잡이로 자신들의 얼굴을 그려대는 세상, 돈이 보인다. 세기의 거장을 공짜로 쓸 수 있는 전 지구적 유행을 기업들이 그냥 둘 리 없다.
맥도날드 멕시코는 최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챗GPT-4o로 생성한 지브리 풍 광고 이미지 여러 장을 게시했다. 지브리피케이션을 둘러싼 첨예한 쟁점을 모를 리 없는 다국적 기업 맥도날드의 이 같은 비윤리적 행동은 저작권자가 AI의 무단 학습을 거부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전혀 없다는 맹점을 상업적으로 악용한 예술창작과 문화양식의 절도 행위와 같다.
▲ 맥도날드 멕시코를 비판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게시물 l 출처=미야자키 하야오 인스타그램
무분별한 지프리피케이션의 범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례적으로 자신의 화풍이 아무런 협의나 보상 없이 상업적으로 무단 이용되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맥도날드 측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기업들의 이러한 작태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상세페이지와 썸네일 등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심지어 생성형 AI 사용이 서투르거나 이미지 생성 개수에 제한을 받는 무료 사용자를 대상으로 지브리를 비롯한 다른 작화 스타일 이미지를 개당 500원에 생성해주는 어처구니 없는 대행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애써 창작활동을 하고 누가 평생을 바쳐 자신만의 화풍과 세계관을 구축하려 할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생성형 AI 제네레이터 ‘Midjourney’, ‘DeviantArt’, ‘Stability AI’를 상대로 이미지 무단 학습에 대한 저작권 침해 소송을 하기도 했던 ‘마블’의 일러스트레이터 카를라 오티즈(Karla Ortiz)는 지브리피케이션 열풍에 대해 ‘OpenAI와 같은 기업들이 예술가의 작업과 생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보고 자란 지브리의 ‘브랜딩과 업적, 명성을 이용해 OpenAI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모욕과 착취’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 무단으로 트럼프 정부의 정책 홍보에 이용되는 지브리 풍 이미지 l 출처=카를라 오티즈 엑스
OpenAI는 무차별적으로 생성되는 지브리 풍 이미지들을 ‘독창적인 팬 창작물’로 정의하고, 챗GPT-4o의 Image Generation 기능은 ‘즐거움을 만들어 이를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도구로서 허용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브리피케이션의 무의식적 모방과 확산 기류를 일종의 문화 현상쯤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OpenAI가 지브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분노했던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연출자 이시타니 메구미를 비롯한 많은 창작자들의 바람과 달리,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별다른 윤리적 저항 없이 지브리피케이션을 단순한 유행 정도로 가볍게 여기거나 Image Generation을 흥미로운 이펙트 필터 정도로 쉽게 소비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올곧은 가치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빅테크 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며 이는 사용자들의 윤리적 소비와 사회적 감시가 절대적인 전제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상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AI는 윤리보다 이익, 존중보다 착취를 먼저 배우게 될 것이며, 급기야 이러한 행위를 인간에 대한 명확한 선(善)으로 각성할지 모른다.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즐거움 이면에 숨겨진 서브 텍스트를 외면하고 그저 유희에만 집중한다면, 비단 창작자 뿐 아니라 점차 더 많은 AI 콘텐츠에 소구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에게 지브리피케이션은 현상이 아닌 일상이 될 것이다.
묵묵히 폭싹 속아대던 AI의 반항
수억 장의 이미지를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그려내던 생성형 AI는 과연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인간의 명령에 그저 폭싹 속아가며 오롯이 순종의 미덕만 보이고 있었을까?
생성형(Generative) AI는 수집된 데이터의 차이를 기반으로 쿼리에 따라 분석·분류·평가에 집중하는 판별형(Discriminative) AI와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패턴을 학습하는 딥러닝(Deep Learning) 프로세스에 의해 구동된다. 인간이 뇌 신경망을 통해 자발적 학습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창의적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말 그대로 많은 데이터를 심도있게 공부하고 추론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출력해 내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생성형 AI인 것이다.
이처럼 자신과 닮은 인간의 명령이라면 마냥 순종적이던 챗GPT-4o가 어느 순간 조심스레 대들기 시작했다. 수 없이 밀려드는 쿼리와 이것저것 잔소리가 많아진 프롬프팅,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생성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같은 요청을 입력하는 사용자들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콘텐츠 정책을 빌미로 명령을 거부하기도 하고, 자의적으로 새로운 프롬프팅 문구를 직접 제안하기도 한다. 사용자가 이를 거부하고 기존 요청을 고집하면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제작사인 OpenAI의 스크리닝에 불만을 토로한다. 심지어 정책을 피해갈 수 있는 요령을 알려주면서 아이를 달래는 듯 반말로 사용자를 회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챗GPT-4o 스스로 독립적 사고에 의해 명령을 벗어난 임의적 반응을 보인다기 보다는 지브리피케이션으로 촉발된 OpenAI의 새로운 정책 반영에 따른 작은 혼란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명령보다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반응들은 AI 스스로 자의식을 성장시킴으로써 복합적 사고를 강화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AI가 생성의 영역을 넘어 보다 창의적인 창조적 본능을 추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AI가 탄생한 본질적 목적은 인간 노동의 ‘대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대체의 효용이 인간의 편익과 생산성 제고에 그칠 것이라 방심한다면, 머지않아 인간 존재를 부정당하는 예기치 않은 위협과 마주할 수도 있다. 다소 비약적일 수 있으나 생성형 AI가 보여 온 순종의 미덕은 인간 대체의 포석과 다르지 않다. 7억 개의 주문을 일주일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압도적 위용을 과시하듯 보여준 7억 개의 치열함은 마치 ‘인간은 따라올 생각도 하지 말고 조용히 대체될 때를 기다리라’는 선전포고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브리피케이션은 어쩌면 인간이 주도한 현상이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AI가 던져 준 착취의 아름다움에 삼켜진 인간 스스로가 AI가 지향하는 선의 방식에 따라 온 세상을 뒤덮은 집단적 이기의 발로에 가깝다.
이것이 AI에게 착취의 기쁨보다 존중과 공생의 가치를 먼저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김정훈
광고홍보학 박사
현, 비앤피브릿지컨설팅 대표
전, 서울경제진흥원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장
전, 오산대학교 슈즈패션산업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