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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픈 화이트 큐브가 된 ‘성수’,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 3
작성일 2023-08-10 조회수 458
오픈 화이트 큐브가 된 ‘성수’,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 3

2023-08-10 458


오픈 화이트 큐브가 된 성수’,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 3

 

김정훈 l 광고홍보학 박사, 비앤피브릿지컨설팅 대표

 

 

메카에 사는지조차 모르는 메카의 주민들

 

일개 동 단위에 불과한 성수가 수제화의 메카라면 부산은 도시 자체가 신발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 클러스터나 특정 집적지구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부산을 대표하는 비내구 소비재 산업은 명실상부 신발이었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의 신발산업은 소비재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던 1900년대 중반부터 이미 부산 제조산업을 이끌던 견인차였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내수는 물론 소비재 수출산업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구가해왔다. 부산은 이견의 여지없는 신발의 메카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정작 부산 시민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 신발 메카의 주민임을 인지하고 있을까?

2022년 부산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부산 지역별 핵심 산업 및 기업현황 분석>에 따르면 16개 구·군 중 제조업을 핵심 산업으로 하는 지자체는 강서구, 기장군, 사상구, 사하구의 4개 지역에 그쳤다. 또한 지역별 상위 3개 기업에 신발관련 기업이 포함된 지역은 C사와 H사의 소재지인 사하구와 연제구 두 곳 뿐이다. 부산 신발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던 부산진구와 동구는 금융 및 보험업, 사업서비스업을 핵심 산업으로 하고 있다.

 

지난 1999년 대구의 섬유, 경남의 기계와 함께 부산경제 진흥을 선도할 대표산업으로 선정되었던 신발산업은 유의미한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부산시 10대 전략산업 중 5대 구조고도화산업, 5대 지역전략산업 등으로 재편되었다가, 2009년 생활소재 산업의 신발소재 부문으로 소분류 된 이후 부산시의 집중육성 전략산업 선정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더욱이 부산 지역 전체 제조업 대비 신발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감소한데다 OECD에서 제시한 R&D 집약도 수준에 따른 제조기술 수준마저 저기술(Low Tech) 산업으로 분류됨에 따라, ICBM(IoT-Cloud-Big Data-Mobile) 기반의 전략적 미래산업에 비해 정책적 지원과 홍보에서도 다소 소외된 상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개편된 부산시의 5단계 전략산업 역시 스마트해양, 지능형기계 등과 같은 기술고도화 부문의 7대 혁신 산업만을 리스팅하고 있다.

부산 시민들의 인식조사를 포함한 일부 연구들에서도 MICE 산업을 중심으로 한 관광컨벤션, 해양, 물류 등이 부산의 대표산업으로 보고되고 있을 뿐, 신발을 떠올리는 부산 시민은 많지 않다.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신발산업을 저기술 산업으로 분류시킨 OECDR&D 집약도 수준은 총 생산액 대비 R&D 부문 지출액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신발산업은 노무비가 차지하는 계수적 비중과는 별개로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닌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부산 신발산업의 핵심 카테고리라 할 수 있는 스포츠화, 특수기능화 등의 경우 기술집약적 산업임과 동시에 소프트웨어, 스마트 팩토리, 케미컬 테크 등의 고도화된 R&D가 요구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에 해당한다. 단순 노무비 비중을 기준으로 저기술 수준 범위에 포함된 신발업계가 다소간의 부당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부산의 신발산업은 이와 같은 시선을 산업의 관점으로 제한한 채 기존의 방식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 보인다. 마치 오랜 경험과 기술만을 꽉 움켜쥔 채 열매 없이 크게 자라버린 퇴영적인 고목과도 같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아무리 잎을 많이 만들어내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없다. 꺾이지 않을 것만 같던 부산의 신발산업이 우수한 기술력과 일정 수준 이상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일까? 노동비 절감의 실패가 아닌 한 가지 색의 이파리만 무성하게 만들어 내왔던 안일함 때문은 아닐까?

 

현재 부산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신발은 다국적 글로벌 브랜드의 주문자 상표부착 방식(OEM)을 따르고 있다. ODM이나 OSM 방식이라 해도 생산자는 결국 아웃소싱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물론 이와 같은 사업방식은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안정적인 기업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정량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웃소싱 시스템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주문자와 생산자 간의 등위적 관계는 장기적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주문자의 경영적 선택 뿐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내·외부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도 양자 간의 결속적 관계는 순식간에 생산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해적 관계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신발시장을 양분하는 두 글로벌 브랜드 중 어느 한 곳의 점유율 상승으로 인한 다른 한 곳의 실적 하락이 해당 브랜드의 아웃소싱 점유율을 높여가던 부산 소재 국내 제조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최근 보도는 이 같은 불안정성을 단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리쇼어링에 실패한 아디다스의 스피트 팩토리(20204월 폐쇄) l 사진출처=adidas

 

전 세계 애플 제품의 50%를 생산하던 폭스콘 사태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러한 현상은 신발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아웃소싱 제조기업에 상존하는 공통된 위협요소라 할 수 있다.

 

부산 신발산업의 지난 성장사는 등위적 가치사슬에 구속된 인더스트리의 경직 안에서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부산의 신발산업은 단색(單色)의 이파리만 무성히 달아내던 고목이 아닌 다색(多色)의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변곡의 꼭짓점에 서있다.

 

 

폭스콘이 아닌 애플을 맺기 위한 파종(Seeding)

 

전통적 제조산업으로 분류되는 신발산업 역시 영세화, 고령화, 고착화와 같은 제조산업 전반의 고질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같은 문제는 디자인력이나 기술력에 앞서 가격 경쟁력이 우선시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아웃소싱 중심 산업은 이러한 문제점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요구되는 생산기업의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의 보유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상수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관련 기관들이 앞다투어 발표한 것과 같이 ICT 기술이 융합된 산업 고도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아웃소싱 영역으로 제한된 투자와 교육만이 집중된다면 이는 또 다시 가격 경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집스런 고목만 늘리는 악수가 될 수 있다.

산의 초록이 짙어진다 해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고목으로 가득 뒤덮인 산이라면 그 산은 오래도록 초록일 수 없다. 지난 20227월 부산연구원의 <부산 스타일테크 산업 현황 및 육성방안 연구>를 통해 스타일 테크 산업 특화분야로 특정된 신발산업의 정책적 지원 또한 생산 중심의 물리적 성장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인 관점으로 접근되어야 하는 이유다.

  

폭스콘 공장 폭동 사태(정저우시, 중국) l 사진출처=AFPTV

 

앞서 언급한 폭스콘은 모기업인 홍하이 그룹의 전폭적인 투자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애플의 아이폰 생산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HP, Dell과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대규모 아웃소싱을 전개하는 대만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의 샤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사업부문까지 인수한 대형 OEM 전문기업 폭스콘의 매출액은 대만의 국민기업이라 불리는 TSMC3배에 이른다.

그러나 폭스콘의 기업가치는 이러한 높은 실적 수준과는 반대의 양상의 보인다. 폭스콘의 시가총액은 TSMC의 불과 20% 수준에 머무르며, 원천기술과 브랜딩이 배제된 아웃소싱 기업의 한계를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211, 중국 정저우 소재 폭스콘 공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동과 노동자 탈주 등으로 인한 생산중단 사태는 폭스콘과 애플의 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폭스콘 공장 한곳에 지나치게 많은 물량이 묶이는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인도의 생산비중을 늘리는 탈중국 정책 정도로 정리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아이폰14 프로 생산량의 85%를 폭스콘에 밀어주던 애플의 신뢰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아웃소싱을 통한 물리적 산업성장이 무조건 지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기술력의 성장과 같은 긍정적 요소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유의미한 가치를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지역의 신성장 동력이라 칭할 정도의 정책적 특화산업이라면 보다 먼 곳을 지향하기 위한 지속가능성의 파종(Seeding)이 필요하다. 부산의 신발산업은 기존의 생산중심 성장이 갖는 한계를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간 축적해 온 기술력과 인프라의 역량은 이제 다양한 스타트업의 신규 브랜드와 기존 생산기업의 자체 브랜드를 위해 나누어질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되기 위해서는 크리티컬한 아이디어에는 질타보다 격찬을, 새로운 시도에는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는 산업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물론 브랜드에 대한 투자가 확대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신발의 메카라 불리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씨앗 뿌리기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세상 어느 땅에도 뿌리지 않는 수확은 없다는 불변의 명제를 상기해야 한다.

   

Parametric Design을 적용한 EVA Foam Outsole l 사진출처=로핏스튜디오

 

또한 다양한 색깔로 태어난 신규 브랜드가 사업적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현해 줄 수 있는 개발인력 및 생산 인프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력과 인프라가 갖추어진 생산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위해 역량을 리소스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스타트업은 이러한 부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정 수준 이상의 MOQ가 요구되는 영세 소공인의 사업적 현실을 외면한 채, SKU 대비 소량생산이 불가피한 스타트업의 조건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적절한 비용과 수량의 간극을 찾아내는 당사자 간 조정과 협의의 범위에 해당되므로 상호 간의 이해와 양보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와 이에 상응하는 품질의 제공을 통해 그들 스스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보이지 않는 손의 자정에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 협의의 과정이 유연하게 조율되도록 지원하는 것은 공공(公共), 즉 보이는 손의 역할에 해당한다.

관련 기관이 수행해야 하는 조율의 역할은 리쇼어링 촉진과 같은 대규모 사업만이 아니다. 리쇼어링은 스피트 팩토리를 앞세워 이를 표방하던 아디다스마저 조기 실패할 만큼 기업의 이기가 크게 작용하는 난제이며, 해외에 진출한 국내기업 중 93%가 이미 리쇼어링 계획이 없음을 표명한 사업이기도 하다.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의 기관과 정출연들이 발표한 ICT와의 융·복합 정책 또한 신발산업의 현실적인 쟁점이 되기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신발부문 스타트업과 소공인들에게 체감할 수 있는 호혜적 공유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손의 품앗이가 보다 실질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성장시킬 핵심 대상을 전환한다는 것은 모두가 함께 씨앗을 바꾸어 심는 것과 같다. 부산의 모든 신발인들과 타 지역 어느 곳에도 없는 신발전문 지원기관들은 이제 단 몇 개의 폭스콘이 아닌, 수많은 애플들을 맺기 위한 파종의 채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