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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픈 화이트 큐브가 된 ‘성수’,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 2
작성일 2023-08-09 조회수 370
오픈 화이트 큐브가 된 ‘성수’,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 2

2023-08-09 370


오픈 화이트 큐브가 된 성수’,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 2

 

김정훈 l 광고홍보학 박사, 비앤피브릿지컨설팅 대표

 

 

예술의 경직을 허물어뜨린 ‘Open White Cube’, 성수

 

아름답지만 엄숙한’, 관계의 폐쇄성이 잘 드러나는 예술의 등위적 계설이다. 예술과 마주하기 위한 올바른 태도는 공감이 아닌 미적 경건함에 가까웠다. 예술이 전달하는 심오한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숙연한 고요함이 필요했고, 예술 작품은 그러한 엄숙함이 보장된 공간에 차분히 놓여져야만 했다.

희고 커다란 벽으로 둘러싸여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해야 하는 제의적(祭儀的) 감상 공간, 대부분의 예술 전시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 불리는 이러한 백색 공간을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예술을 가두고 있던 정적의 틈 사이로 작은 소란이 새어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형태로 예술을 소비하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소통 중심의 관계적 개념으로 예술의 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물론 화이트 큐브라는 장소성이 제공하는 예술적 사유는 여전히 유의미한 가치를 담고 있지만, 아성과도 같던 기존의 경건함과 엄숙함은 스스로 자신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현대미술의 성지로 일컬어지며 예술의 권위를 상징해 오던 MoMA(The Museum of Modern Art, 뉴욕현대미술관)에 실험적 퍼포먼스를 위한 별도의 전용공간인 ‘Marie-Josée and Henry Kravis Studio’가 리노베이션된 것은 이 같은 변화의 패러다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David Tudor in the Marie-Josée and Henry Kravis Studio, MoMA l 사진출처=MoMA 

 

이제 예술의 주된 경쟁자였던 다른 예술 작품의 자리는 보다 대중 친화적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대체되고 있다. 상호교감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예술의 소통방식이 새로운 예술소비 형태로 차용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예술적 가치를 대중적으로 소비하고 공유하는 현재의 성수는 예술의 경직된 벽을 무너뜨린 오픈 화이트 큐브라 해도 손색이 없다.

카멜레온 같은 성수의 어느 전시장은 때로는 뮤지엄으로, 때로는 시끌벅적한 쇼케이스로 변신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연히 유명 작가의 대담을 들었던 도서 전시장이 어느 날 화려한 팝업스토어로 바뀌어 있는가 하면,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근처 카페에는 휴대폰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을 만큼 볼거리가 한가득 널려있다.

슈즈 디자이너가 아닌 이들에게는 유리창 너머 진열대에 놓인 구두 장식이나 형형색색으로 걸린 가죽들마저 멋들어진 공예품처럼 느껴진다. 한 손에 가죽을 말아 쥔 채 거리를 활보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온다면, 디자이너 체험을 할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 공방을 찾는 일쯤은 어렵지 않다. 공방 체험을 마친 해질녘 서울숲길의 어느 와인바에 들어서면 벽을 가득 채운 작품 사진들 사이로 작은 재즈 공연이 한창이다.

성수 전체가 커다란 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다채로운 볼거리와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Sumsei Terrarium 성수 l 사진출처=섬세이테라리움

 

이렇듯 성수가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회자되며 트래픽이 집중되는 것은 성수가 허용하는 예술의 범위 확장과 전시 개념의 다양성에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 세분화된 소비특성을 소구하며 공유를 통한 관계의 군집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이 같은 관계몰입 형태는 무형의 콘텐츠를 구매 가능한 재화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경제적 구조를 갖게 함으로써 성수의 모멘텀을 지속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성수의 변화가 모두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구도심 개발지들과 성수의 가장 큰 차이는 오랜 시간 성수를 지켜온 수제화라는 키워드에 있다.

일부 내셔널 브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화기업들은 온라인 중심으로 수요시장이 재편되기 이전까지 반응생산 기반의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중심으로 기업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러한 QRS(Quick Response System) 기반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SCM(Supply Chain Management)과 유사한 제조유통 공급망 관리 시스템이 필요했고, 제조공장과 원부자재 업체는 물론 특수추가공정 업체들까지 한데 모여 자발적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 성수야말로 제화 브랜드의 헤드쿼터를 위치시키기에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과 소비의 변화에 따른 자본의 이동은 수제화의 메카라는 성수의 자긍심에 더는 이전과 같은 응원을 보내주지 않았다. 더욱이 새로운 영향력을 갖게 된 성수의 변화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신흥 중심지의 필연적 과제 역시 어김없이 토해냈다.

자유경제 체제가 토해내는 과제의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정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자정력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 매몰될수록 더 맵고 냉소적이다.

변화의 패러다임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올라타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 YUUL YIE 전시 포스터 l 사진출처=율이에공식인스타그램

 

성수의 변화는 수제화를 산업이 아닌 문화적 유산이자 로컬 브랜드 그 자체로 탈바꿈 시키려 한다. 성수라는 문화적 그릇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진 슈즈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이러한 패러다임에 동승해 산업을 문화로 즐길 줄 아는 새로운 세대와 다양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창작하고, 불러 모으고,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능동적인 가치공유의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 성수는 이제 완전히 출입문이 사라진 오픈 화이트 큐브로 변모되었다.

 

그렇다면 부산 신발산업은 어떻게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있을까?

 

 

 

 

* <오픈 화이트 큐브가 된 성수’, 인더스트리의 경직에 갇힌 부산 신발산업 - 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