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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라톤을 통한 체험적 디자인 개발 사례[기획기사]
작성일 2022-12-01 조회수 890
마라톤을 통한 체험적 디자인 개발 사례[기획기사]

2022-12-01 890


마라톤을 통한 체험적 디자인 개발 사례


 

하백디자인연구소 소장 하용호 / 경남정보대학교 신발패션산업과 겸임교수


■ 마라톤과의 인연

     내가 마라톤에 인연이 닿은 것은 1993년 여름이었다.

과중하게 늘어나는 체중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온 점도 있지만 회사((주)세원)에서의 업무가 신발 디자인 개발이었고 많은 ASICS 제품 개발품 중에서 마라톤 신발은 나에게 달리고 싶은 열망을 항시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내가 디자인한 마라톤화를 내가신고 테스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업무 태만으로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에 짧은 마라톤 복을 입고 거리로 뛰려 나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점점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들면서부터 남의 시선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중독 상태로 빠져들게 되었고 1995년 경주 벚꽃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완주하면서부터 시작된 대회 참가는 금년으로 53번의 풀코스, 100여 번 이상의 하프, 10km 대회를 소화하여 마라톤 역사를 만들 수가 있었다. 독립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마라톤 하는 디자이너’라는 수식어와 함께 다수의 브랜드와 협업하여 마라톤 신발을 개발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 마라톤은 과학적인 선진국형 운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라톤이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진 재미없는 운동으로 알고들 있다.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마라톤은 아주 과학적인 훈련과 특히 신발의 발달로 인하여 그 기록이 급속히 단축되어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기록(케냐 킵초게 1시간 59분 40초 /비공인)을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그리고 마라톤 인구수는 그 나라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인구 수의 15%가 마라톤을 즐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마라톤 인수 증가는 아이러니하게도 1997년 IMF를 겪으면서 실직자들의 돌파구로 마라톤을 선택하여 그 인구 수 뿐만 아니라 대회 수도 급증하여 지금은 년 간 400개 대회와 400만 명의 참가 인원으로 총 인구대비 8~9%선에 있어서 향후 증가 가능성을 남겨 놓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을 가보면 공원이나 거리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고 우리나라도 꽤 많은 매니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동남아 등지에서는 이 같은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케냐, 에디오피아가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이 많은 것은 그들은 생계형 마라톤을 하는 극히 일부 엘리트 선수들이지 일반 국민들은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다.  

 


 

■ 마라톤 체험을 통하여 마라톤 신발 디자인의 중심에 서다.

     13년 동안의 ㈜세원 ASICS R&D Team 생활에서 접했던 수많은 마라톤화 개발을 통하여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7년 5월 독립한 이후에 시작된 마라톤 붐에 편승하여 다수의 브랜드와 마라톤화 개발 협업을 진행하였다. 마라톤 붐을 예측하고 이를 브랜드에 이해시킴으로서 국내 브랜드들도 마라톤 신발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마라톤 하는 디자이너’라는 소문은 협력 관계를 만드는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ASICS, LECAF, FILA, PROSPECS, RAPIDO, VITRO 등의 마라톤화 디자인 개발에 참여하여 다수의 제품을 출시를 하게 되었으며, 특히 ASICS의 GEL-Lighten은 1모델에 9칼라까지 전개되어 7년 동안 롱런을 하는 효자 상품이 되었고, LECAF의 Load Run 시리즈는 당시 브랜드 매출을 10% 상승시키는 큰 성과를 이룩하게 되었었다.

 


 

■ ASICS Japan을 통해 체험한 과학적 마라톤화 개발 경험

     대부분의 스포츠 전문 경기화들이 그렇지만 선수 개인별 발 상태를 감안한 신발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산출된 평균치를 활용한 화형(last)으로 경기화를 만든다. 따라서 내 발에 맞는 맞춤 경기화를 경험하는 것은 연구, 개발 인으로서는 대단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2004년 춘천마라톤에서 나에게 그런 경험의 기회가 왔다. 일본 ASICS에서 공수한 FOOT Scanner로 내 발을 정확히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LAST 제작 후, 일본에서 제작한 맞춤 마라톤화 4족을 공급받았는데, 그 피팅감이란 실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소재의 유연성, 경량성은 물론 특히 SOLE 부분의 충격완화와 반발탄성은 놀라웠다. 가장 애장하던 마라톤화는 20번의 풀코스를 견뎌내고 이번에 수선 작업을 거친 후에 21번째 풀코스를 함께하여 주었다.

기본적인 제품 설계의 완벽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소재 산업의 발전이 신발 산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느끼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 이봉주 선수와의 만남과 피나는 훈련이 만든 발

     이봉주 선수는 참 무식하게 순수한 선수이다. 그래서 모든 달림이들은 그를 좋아한다.

내 또한 마찬가지인데, 그의 발을 측정하고 마라톤화를 만들어주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봉주 선수는 본래 코오롱 육상단 소속인데, 1999년에 선수단이 집단 이탈을 하여 무적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선수들끼리 여관방에서 합숙하며 자기들끼리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FILA KOREA에서 의류, 용품, 신발을 지원하였다. 의류나 용품은 별 문제가 없었으나 신발은 아무래도 선수에게 적합하여야만하기 때문에 FILA KOREA에서 나에게 제작 요청이 들어왔다.

때는 2000년 3월 동아마라톤이 열리기 전날 올림픽공원 호텔에서 발 측정을 위한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해 2월에 이봉주 선수는 동경마라톤에 출전하여 2시간 7분 20초의 한국최고기록을 수립하였다. 소속도 없는 선수가 외로이 훈련하여 최고기록을 수립한다는 것은 얼마나 그의 집념과 노력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아직 그의 기록은 22년째 우리 선수들이 깨지를 못한다.

더욱 놀란 것은 그의 발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다.

보통 스포츠 선수들은 훈련의 영향으로 발의 형태가 변형되거나 심각한 손상이 있는데, 이봉주 선수의 발을 보았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발톱은 마모되어 거의 없는 상태였고 엄지발가락은 안쪽으로 쏠려서 기형적인 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풀코스를 뛰고 나면 엄지발톱은 부지기수로 빠진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발이 기형적으로 변하도록 뛰고 또 뛰었을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숭고한 수도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삼성육상단이 창설되어 보다 안정적으로 훈련을 할 수가 있었다는 점은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 2022년 춘천마라톤에 나타난 NIKE를 위시한  High Cushion 제품의 놀라운 약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마라톤 대회는 3년만인 올 가을부터 대면 대회가 시작되었다.

모두들 오랜만의 대면 대회로 현장은 생동감이 넘쳐났고 나 또한 가슴이 설랬는데 마라톤 신발의 변화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2019년까지만 하더라도 그래도 ASICS가 지닌 마라톤 메카니즘을 마스터스 참가자들이 인정을 하였는데, 올해에는 NIKE의 Air Zoom Alphafly Next%2를 선두로 하여 High Cushion 기능의 높은 미드 솔 제품들이 완전히 장악을 하고 있었다. ADIDAS, HOKA 등의 브랜드 제품도 다소 보였지만 모두가 High Cushion 형태의 마라톤화 이었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가는 제품이지만 엘리트 선수들이 착화하여 기록으로 증명하기 시작하니 일반 매니아들이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이 제품으로 금년 9월에 2시간 01분 09초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하면서 ‘기술도핑’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짐작하건데 NIKE는 이 기능성을 더욱 진화시켜 여러 카테고리에 적용한 제품들을 확산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마라톤, 런닝은 물론 워킹도 가능한 제품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서는 여타 스포츠 전문 신발과 Out Door 영역에까지도 진화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국내 브랜드들이 언제나 선진 브랜드의 Innovation 제품들을 보면서 절반이라도 따라 가려고 하는 경향에 한편으로는 참 서글픔을 느낀다.

 



 

■ 체험하는 디자이너가 만들어나갈 끝없는 신발의 미래 

     나는 마라톤이라는 운동이 30년간이나 나와 함께 있어줌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40~50대에는 신체의 건강과 기록에 대한 욕심으로 유지하여 왔다면 60중반을 넘어선 지금에도 매월 200~250km를 달리는 것은 단지 신체 건강에만 치우치지 않고 이것으로 인해 정신 건강을 지탱하는데 큰 힘이 됨을 절실히 느낀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닳아 없어진 수많은 마라톤 신발들과 지금도 함께 닳아가고 있는 마라톤 신발들을 보면 이것들이 내 역사를 만들고 신발 산업의 한 부분 이었구나 함에 코가 시큰하다.

사람은 과거는 후회하고 미래는 두려워한다. 따지고 보면 현재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

신발의 진화가 얼마나 어떻게 되어 갈지는 아무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작업은 창의적인 누군가의 고민과 열정과 인고의 시간을 통하여 만들어질 것이다. 

나도 그 중심에서 끝나는 그날까지 자리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