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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ESC] 뉴발란스는 제2의 나이키가 될 수 있을까?
작성일 2022-03-29 조회수 508
[ESC] 뉴발란스는 제2의 나이키가 될 수 있을까?

2022-03-29 508


 

2007년 1월9일, 머리가 벗겨진 한 사내가 무대 위에 오르자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다소 편안해 보이는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의 사내가 입을 떼자 곧장 사람들은 환호를 쏟아냈고, 그로부터 1시간 뒤 세계는 앞으로의 20년을 바꿀 발명품이 등장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날은 바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 최초의 스마트폰, 아이폰 1세대를 세상에 공개한 날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운동화 브랜드를 꼽자면 누구나 나이키를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누구일까? 1990년대 농구 팬들은 마이클 조던을 꼽을 테고, 엘에이(LA) 레이커스의 오랜 팬들은 코비 브라이언트나 르브론 제임스를 말할 수도 있겠다.

지구 반대편 포르투갈의 축구 꿈나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대답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부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라는 점이다.

 

 

나이키와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맺어온 긴밀한 관계는 다른 브랜드에서도 볼 수 있다.

아디다스는 1970년대 전세계 테니스계를 군림했던 미국 선수 스탠 스미스의 이름을 딴 신발, ‘스탠 스미스’를 만들었다.

지네딘 지단, 데이비드 베컴, 리오넬 메시, 무함마드 살라흐, 손흥민 등 당대 최고의 축구 선수들에게는 삼선 로고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겨 스포츠 브랜드 이미지를 굳건히 해왔다.

반면 뉴발란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인 스티브 잡스가 100m를 몇초에 뛰었는지, 마라톤 완주 기록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중요한 점은 뉴발란스에도 그런 기록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인데, 그 이유는 뉴발란스가 처음 창립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로 너비 사이즈 도입

 

뉴발란스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세워진 아디다스보다도 무려 40여년 앞서 설립됐다.

영국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온 이민자 윌리엄 라일리는 당시 뒷마당에서 뛰어다니는 닭을 보고 이러한 생각에 빠졌다.

“닭들은 저렇게 얇은 다리와 세 갈래 발을 가지고 어떻게 보행하는 걸까?” 이후 그는 닭의 발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간의 발에 최적화된 균형을 갖춘 동시에 정형학적 치료 효과를 지닌 신발을 개발한다.

그리고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는 뜻을 담아 1906년 ‘뉴발란스 아치’(New Balance Arch)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다.

 

 

창립 이후 뉴발란스는 줄곧 다양한 발바닥 모양에 맞춰 누구나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제공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바로 ‘가로 너비 사이즈’다.

일반적인 신발 브랜드에서 세로 길이로만 신발을 구분해 판매했다면 뉴발란스는 발 모양에 맞게 가로 너비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초창기 뉴발란스는 스포츠 선수들이 아닌 매장 직원, 소방관, 경찰관과 같이 하루 종일 서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신어도 편한 신발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지난 1세기 넘는 역사 동안 뉴발란스에 호황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2년 뉴발란스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3%밖에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도 뉴발란스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제품을 신겨 홍보하기보다, 제품 중심의 마케팅을 고집해왔다.

당시 뉴발란스가 앞세웠던 문구가 바로 ‘그 누구도 후원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원받지 않겠다’(Endorsed by No One)이다.

 

 

2000년대 들어 뉴발란스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닌 ‘아이폰 프레젠테이션’이었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신었던 뉴발란스 992 ‘그레이’는 마이클 조던이 신인왕을 탔던 해 신었던 에어 조던 1 ‘브레드’가 스니커계의 황제로 군림하게 된 것과 같은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니커 중 하나가 됐다.

 

 

 

 

‘말아톤’을 후원한 뉴발란스

 

2019년 뉴발란스 코리아는 ‘아빠 프사 바꿔드리기 프로젝트’로 20명의 가장을 초청해, 새로운 옷과 신발을 제공하여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힙한 브랜드’가 아니라, ‘나이를 먹어도 오래도록 신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또 다른 사례는 영화 <말아톤> 후원에서 볼 수 있다.

<매거진 B>와의 인터뷰에서 뉴발란스 코리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말아톤>의 제작자들이 후원사를 찾았을 때 나이키는 이를 거절했다.

나이키는 최고의 기록에 도전해왔던 브랜드이다.

하지만 뉴발란스는 개개인이 좀 더 잘 뛸 수 있고 잘 서 있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기록적인 결과보다는 성취와 도전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기에 영화 <말아톤> 제작을 후원할 수 있었다.

” 참고로 뉴발란스는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씨를 후원한 바 있다.

2008년 뉴발란스 라이선스를 체결한 이랜드월드는 2021년 전년 대비 1천억원 가까이 성장한 약 6천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나이키, 아디다스에 이은 국내 스포츠 업계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 진출 이후 최고의 한해를 보내고 2022년이 되자 뉴발란스 앞에 이러한 질문이 놓였다.

뉴발란스는 아디다스와 나이키를 꺾고 업계 1위 브랜드에 오를 수 있을까? 뉴발란스는 제2의 나이키가 될 수 있을까?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것은 뉴발란스는 제2의 나이키가 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뉴발란스는 여느 스포츠 브랜드와는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브랜드의 유산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닌 가장 편안하게 오래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뉴발란스가 균형을 잃지 않고 치열한 스포츠 시장에서 발걸음을 내딛는 방식이다.

 

[2022-03-18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