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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의 뒷이야기 3부 [기획기사]
작성일 2021-12-14 조회수 1036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의 뒷이야기 3부 [기획기사]

2021-12-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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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세대 공장과 모델 이야기 2

 

3-2. 현재와 미래

 

 

3-1. 2세대 공장과 모델 이야기 2

 

- 화승 : 1980년 동양고무에서 화승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나이키는 삼화고무와 독점 비즈니스는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국내 여러 공장에서 생산 중이었다. 그 오더를 받던 공장들 중 화승의 계열사인 풍영화성과 기술 제휴로 1981년에 화승 나이키를 설립했다. 그러나 4년 후 화승과 나이키는 비즈니스를 조기 종결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나이키의 무리한 단가 문제와 리복의 생산 때문이었다. 나이키와 결별 한 화승은 리복과 비즈니스를 진행함으로써 엄청난 동반성장을 하게 되었다. 1982년 화승이 에어로빅화인 프리스타일 모델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마침 미국에서 에어로빅 붐이 불었는데 당시 트렌드와 맞물려 엄청난 인기를 끌며 나이키를 꺾고 리복이 세계 최고 브랜드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7년 뒤인 1989년에 어퍼에 공기를 주입하여 피팅 조절이 가능한 ‘The Pump(더 펌프)’ 농구화를 발매하여 높은 기술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1993년에는 미래지향적 신발인 ‘Insta Pump Fury(인스타 펌프 퓨리)’를 발매를 하는 등 나이키 못지않은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 및 생산하는 등 부산의 신발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 삼양통상 : 1957년 허정구 회장이 삼양통상을 설립하여 1979년에 신발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다. 이후 1985년에 부산에 신발공장을 짓고 마침 화승과 합작회사인 화승 나이키가 조기 종료가 된 시점에서 1986년에 나이키와 합작회사인 삼나 스포츠를 설립하였다. 사실 삼양통상은 필 나이트 명예회장과 인연이 깊다. 바로 허정구 회장의 아들인 허광수 회장이 미국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유학 당시 필 나이트와 친구가 되었다. 그 관계가 추후 발전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에어 플라이트 허라취, 에어 다윈 등의 좋은 오더를 받기도 하였으나 아쉽게도 삼양통상은 신발 비즈니스 부문을 삼호에 매각 후 자재 비즈니스만 진행하고 있다. 당시 필 나이트는 삼양통상이 신발 비즈니스를 계속하여 이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했다.

 

- 창신INC : 1981년 정환일 회장이 대신교역을 설립하였다. 여느 공장과 다르게 대신교역은 나이키의 물류 회사로 시작으로 신발 생산까지 하게 된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 신발 생산은 갑피를 주로 생산하여 납품을 해오다 1985년부터 완제를 생산해오던 중 1987년부터 나이키 제품을 생산했다. 또한 창신INC는 도요타의 LEAN 시스템을 나이키 공장 중 최초로 도입하여 낭비의 최소화를 이뤄냈으며 혁신적인 공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 NOS 교육센터가 생겨 나이키와 비즈니스를 하는 세계의 공장들이 창신으로 교육을 들으러 방문을 하기도 하였다. 

 

- 풍원제화공업 : 1983년 류부열 회장이 영우산업을 설립하였다. 2세대 공장 중 막내 공장에 속하며, 원래 풍원은 프로 케즈와 비즈니스를 먼저 시작했다. 당시 프로케즈 신발의 인기가 좋아 풍원은 빠르게 회사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아디다스를 하던 공장인 대봉은 부도가 났고 삼호는 아디다스와 비즈니스를 끝내고 나이키로 갈아탔던 시점이었다. 이때 풍원이 아디다스와 비즈니스를 성사시켜 국내 마지막 아디다스 공장의 계보를 잇게 되었다. 특히 삼호에서 생산하던 제품군들인 슈퍼스타, 포럼 등의 고가 제품군을 넘겨받게 되었다. 추후 중국 대련에 생산 공장을 지으며 국내는 하이테크 개발 센터 신사옥을 지음과 동시에 한국 아디다스 개발 센터와 동시에 운영이 되었다. 이때 국내에서 최초로 태권도화를 개발 및 생산을 하여 해외에 수출을 하는 등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보여주었다.

 

 

3-2. 현재와 미래

 


 

현재 2세대 공장들 중 1세대 공장처럼 사라진 곳도 있으며 언급이 되지 않은 한국의 공장들이나 해외에서 뿌리를 내린 한국계 공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아직 대만계 기업의 아성이 높다고 하지만 다시 한국의 기술과 생산성 덕분에 옛 시절의 영광을 찾아오고 있는 중이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은 ‘OEM, ODM을 생산하는 공장은 결국 해외 브랜드의 하청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비즈니스가 끊길 것이 아니냐?’라는 꼬리표가 아직도 달고 다닌다. 그러나 기술력이 좋고 브랜드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공장은 비즈니스가 끊길 일은 굉장히 힘들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사례를 들어보면 디카프리오 스니커즈로 유명한 ‘allbirds(올버즈)'노바인터내쇼널과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다 

 


 

 올버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친환경 신발기업으로 유칼립투스 나무, 사탕수수, 양모, 재활용 플라스틱 병 등을 이용해 신발을 만든다. 그중에서 양모 원단을 이용한 스니커즈를 만들기 위해 신발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1년 동안 매달렸으나 실패를 했다. 아쉬움이 컸던 차 당시 폐업까지 생각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던 노바인터내쇼널을 소개받게 되었고 노바인터내쇼널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 달 만에 바이어가 원하는 퀄리티의 샘플을 개발해 내게 되어 올버즈와 함께 동반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장은 브랜드와 돈독한 관계를 맺기 좋은 방법은 타 공장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지닐 수 있다는 사례를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브랜드 런칭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물론 브랜드를 런칭하여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현 대한민국의 상황은 브랜드로 자리 잡기란 쉽지 않으며 브랜드로써 클 수 있는 환경은 제한적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인구는 5천만이며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인데 이론 상 내수시장이 돌기 위해서 인구 1억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시장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적어도 인구가 1억이 웃도는 해외시장을 공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반면 다른 예시로 뉴발란스 코리아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뉴발란스 카라반 샌들을 살펴보자. 기존에 한국에서 볼 수 없던 트렌디한 디자인의 샌들로 한국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고, 히트 상품이 되어 유행 후 중국에 입소문이 퍼져 역수출을 한 사례다. 중요하게 볼 사항은 중국은 한국의 히트 상품이라면 중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이런 점을 이용하여 진출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한국은 공장의 기술력이나 브랜드로서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기에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갈지에 대해 전략을 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볼 수 있다. 끝맺음으로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의 협업을 통해 부산의 찬란했던 신발 역사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