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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의 뒷이야기 2부 [기획기사]
작성일 2021-11-30 조회수 1361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의 뒷이야기 2부 [기획기사]

2021-11-30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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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세대 공장 소개


2-2. 당시 트랜드


2-3. 2세대 공장과 모델 이야기

 

 

2-1. 2세대 공장 소개

 

1세대 수출을 전속 담당하는 5개의 큰 공장들을 필두로 군소 공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군소 공장들은 1세대 공장의 어퍼나 솔을 납품하거나 완제품 오더를 넘겨받기도 했다. 추후 브랜드와 계약에 성공하여 2세대 공장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2세대 공장들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하단의 사진을 보자.

 


 

 

2-2. 당시 신발 트랜드

 


 

EVA 소재가 지나고 PU 계통의 솔의 등장했다. EVA보다 꺼짐이 덜하며 쿠셔닝이 좋다. 또한 제작 방식이 쉽기 때문에 까다로운 형태의 디자인 또한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나이키의 혁신이라 불리는 외장형 에어백이 장착된 에어 맥스 1 역시 PU로 생산을 했다. 이를 토대로 각 브랜드에서도 특색이 담긴 PU 계열의 신발이 등장하게 되었다. 다만 PU의 단점이 존재하는데 EVA보다 무게가 무겁고 공기 중의 수분으로 인하여 가수분해가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PU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EVA의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IMEVA(=Injection Phylon)와 CMEVA(=Compression Molded Prefoam)의 등장인데 IMEVA는 EVA 원료를 고열로 녹여 몰드에 액을 주입하여 발포하는 방식이고 CMEVA는 가공한 EVA 폼(=Prefoam)을 몰드에 넣어 성형을 하는 방식이다. 두 제품 모두 가볍고 기존의 EVA보다 내구성이 좋았으나 역시 장시간 착용 시, 발생하는 고질적인 꺼짐 현상은 계속 있었다. 게다가 IMEVA는 금형에서 발포를 하기 때문에 초창기 생산에서 PU보다 수축률 부분에서 불량률이 높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나마 CMEVA는 IMEVA보다 복잡한 구조의 형태와 일정한 형태로 제작이 가능한 점이 있지만 공정이 많아 생산율이 좋지 못한 각각의 장, 단점이 있다.

 

 

 

추후 IMEVA는 색다른 방식으로 발전한다. 바로 IU(Phylite)라고 불리는 방식인데 IMEVA와 고무를 섞어서 만든 방식이다. 리복이 90년대 중반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3D UltraLite가 붙는 제품군들이 대표적인 예시라 볼 수 있다. IMEVA나 CMEVA보다 무게는 조금 나가지만 내구성이 올라가고 아웃 솔이 없는 형태로 사용하거나 또는 사용량을 최소화(가장 많이 닳는 토와 힐 부분에만 아웃 솔 사용) 할 수 있게 되어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주로 러닝이나 트레이닝화에 많이 접목이 되고 있다. 

 

 

2-3. 2세대 공장과 모델 이야기

 

다음으로 2세대 공장들의 이야기를 할 차례다. 

 

- 태광실업 : 군소 공장들 중 하나인 태광실업은 박연차 회장에 의해 1971년에 정일산업으로 설립되었다. 여느 공장처럼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다 1987년 동양고무가 나이키 에어 맥스 1 개발에 손을 들어버렸는데 이 사건은 태광실업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었다. 이 외장형 에어 맥스 1 개발 및 생산에 성공하여 나이키와 함께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전에 진행했던 여러 브랜드의 오더는 종료되었고 나이키만 개발 및 생산을 하게 되었다. 이후 솔과 몰드 개발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발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나이키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에어백 기술이 들어간 에어 맥스 1, 180, 93, 95, 97 등의 제품들이 태광실업의 작품이다.

 

- 삼호산업 : 박연차 회장의 둘째 형인 박연구 회장에 의해 1974년 태광케미를 설립되었다. 태광실업과 마찬가지로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다 1987년에 아디다스와 비즈니스 협약을 맺어 아디다스만 전담하여 생산을 하게 되었다. 특히 삼호산업은 아디다스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모델과 스토리가 있는데 1988년에 당시 공장 단가가 30불이 넘는 포럼 하이를 아디다스 프랑스로부터 트랜스퍼 받아 생산하였으며 추후 하이 모델을 개량한 포럼 미드 모델을 개발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 국가대표가 우승하는데 선수들의 전용 축구화를 특별히 제작해 주기도 하였다. 대봉과 더불어 ZX 토션 시리즈와 이큅먼트 시리즈 등 고가의 제품을 개발 및 생산을 했던 아디다스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공장이다. 

 

- 태광고무산업 : 박연차 회장의 첫째 형인 박연만 회장에 의해 1981년에 설립되었다. 태광고무 역시 나이키와 계약을 맺어 진행하였으며 아웃도어와 바스켓볼, 트레이닝화 전담을 하던 공장이었다. 특히 나이키에서 혁신적인 모델로 평가받았던 에어 트레이너 허라취 모델은 태광고무산업이 개발 및 생산을 담당했다. 

 

- 세원 : 김병춘 회장에 의해 1976년에 국제양행으로 설립이 되었다. 세원은 기술이 좋은 공장으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나이키와 아식스의 브랜드를 진행하면서 트랙 & 필드와 러닝 제품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다. 특히 아식스의 경우 일본인들의 장인 정신 때문에 신발 만들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는데 요구사항이 많고 품질에 민감하기로는 아디다스 독일인과 최고를 다툴 정도라 불렸다. 그리고 신발업계에 종사하는 연배가 있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세원 공장을 이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특히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전설 마이클 존슨의 황금색 나이키 신발 역시 세원의 작품이다.  또한 나이키 테니스 카테고리도 세원에서 담당했는데 마리아 샤라포바, 로저 페더러 등 걸출한 테니스 스타들의 신발까지 개발과 생산을 했던 기술력이 뛰어난 공장이었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