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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의 뒷이야기 1부 [기획기사]
작성일 2021-11-12 조회수 1278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의 뒷이야기 1부 [기획기사]

2021-11-12 1278


 


 

  짧았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패패부산이 10월 30일 마무리되었다특히 이번 전시회는 매년 열렸던 기존의 신발 전시회와 다르게 20~30대 층도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남녀노소가 잘 어울릴 수 있었던 전시가 되었다그중에서도 남녀노소 반응이 좋았던 8090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의 못 다 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1-1. 1세대 공장 소개


1-2. 브랜드소개 및 당시 신발 트렌드 


1-3. 1세대 공장과 모델 이야기

 

 

1-1. 1세대 공장 소개

 

이번 패패부산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부스가 있다. 유튜버들 또한 가장 큰 이목을 끌어 영상으로 나왔으며 남녀노소가 흥미와 추억에 젖은 부스였다. 8090 레트로 스니커즈 전시회를 기획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80-90년대 부산을 경제도시로 키운 효자산업이자 산업 역군들의 헌신을 통해 지금의 경제도시인 부산을 건설한 주역들을 회상하고자 이번 전시를 열었다. 또한 이번 전시회는 부산에서 열렸기 때문에 타 지역 구독자들과 하지 못한 이야기를 칼럼을 통해 소개하려 한다. 우선 아래의 1세대의 수출 공장들 중 가장 큰 규모였던 5곳을 살펴보자.

 


 

 

1-2. 브랜드소개 및 당시 신발 트렌드

 

이렇게 5개 굵직한 수출 신발 대기업을 필두로 부산의 신발 산업은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특히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장들이 5개가 부산에 집약되었으며 베이비붐 세대의 풍부한 인력과 저렴한 인건비 그리고 선진국에서 생산된 신발 못지않은 품질 덕분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브랜드가 몰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생산을 위해 부산을 찾아온 브랜드를 본다면 아래와 같다.

 


 
 

이외에 더 많은 브랜드가 한국에서 신발을 생산했다. 특히 화승 나이키 시절 전 세계 나이키 70%는 한국에서 만든 것입니다라고 지면 광고에 실릴 정도였으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예측 가능할 것이다. 특히 1세대 시절의 신발을 살펴보자.

 

보편적으로 70-80년대에 등장한 신발들의 특성은 폭싱 테이프가 둘러진 벌커나이즈드스니커즈, ‘컵솔스니커즈, ‘나일론 EVA’ 스니커즈 등 대표적 모델이라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벌커나이즈드스니커즈는 생고무에 황을 첨가하여 고열과 고압으로 가공을 하면 고무의 탄성과 경도가 단단하게 변한다. 이때 황을 첨가하는 것을 벌커나이즈드라고 부르며 찜통을 영어로 오토클레이브로 불린다. 특히 국제상사에서 컨버스와 프로-케즈 브랜드의 주력 제품이었으며 프로스펙스 역시 많은 모델을 생산했다. 컨버스의 경우 국제상사에서 24개의 제조 라인에서 생산할 정도였는데 현재 세계 신발공장의 1위라는 파우첸은 당시 4개 제조 라인밖에 없어 컨버스가 국제상사에 가서 벤치마킹을 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다음으로 컵솔스니커즈는 1960년대 아디다스에 의해 개발된 방식으로 스탠 스미스, 슈퍼스타가 대표적인 예시로 보면 될 것이다. 신발의 단면을 잘라보면 컵 형태처럼 생겼다고 하여 불리는데 벌커나이즈드처럼 폭싱 테이프를 옆쪽에 두르는 방식이 아닌 미드 솔이 일정한 형태로 높게 올라와 있는 형태이다. 생산방식으로 러버를 가공하는 방식과 PU로 만드는 2가지가 존재한다. 나이키에서 걸작으로 평가받는 베스트셀러 모델 에어 포스 1 하이 제품은 1982년 태화고무에서 최초로 개발 및 생산이 되었다. 컵솔 신발의 특성상 장시간 착용 시, 플렉스 존에 본딩 갭이 생기는데 미드 솔 전체 아리안스 재봉을 추가하여 장시간 신더라도 품질의 문제를 줄일 수 있는 공정 또한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EVA’ 스니커즈이다. 당시 러닝화에 접목되어 굉장한 혁신으로 불렸다. 덧붙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솔이며 가볍고 쿠셔닝이 상단의 2가지 보다 월등히 좋았다. 단점으로 장시간 신거나 몸무게 많이 나가는 사람들은 빨리 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솔의 발전과 더불어 어퍼의 공정 또한 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러너들에 특화된 캘리포니아 공정까지 더해져 피팅감까지 무장하여 각자의 기술력을 과시하던 시기였다. 현재 최신 기술력이 집약된 신발들에 비하면 라이프스타일에 불과한 신발들이지만 비단 인기는 근래에 발매한 신제품들 보다 훨씬 인정을 받고 있다. 이것이 레트로 스니커즈의 변치 않는 가치는 소중한 것이라 말하는 이유다. 

 

1-3. 1세대 공장과 모델 이야기

 

다음으로 각 공장들마다 지닌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 국제상사 : 사실 프로-스펙스 브랜드는 국제상사가 만든 브랜드가 아닌 기존의 브랜드를 인수하여 재 런칭한 케이스다. 시초는 스펙스라는 미국의 브랜드였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에 신발 생산을 하고 미주나 유럽에 판매를 했으나 대금 납부를 하지 못해 국제상사가 인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제상사가 대대적인 개혁 후 런칭하면서 프로-스펙스를 고가 라인 스펙스는 중저가 라인으로 분류하여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삼화고무 : 삼화고무는 1974년에 나이키와 최초로 독점 계약을 했다. 그러나 계약을 하게 된 계기는 꽤나 흥미롭다. 당시 송승호 수출담당 이사는 나이키의 필 나이트 회장이 삼화고무에 가겠다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나이키는 그저 그런 브랜드 중 하나였고 삼화고무 입장에서는 그런 전화는 빈번히 오기 때문에 메모를 해두고 잊어버린 것이다. 마침 그날 미국의 CTC라는 브랜드 에이전시 회장이 한국에 모델 수주에 관련하여 방한하는 날이었고 제일 규모가 컸던 국제상사에 가는 중에 공항에서 눈도장만 찍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송승호 이사의 등을 친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필 나이트 회장이었으며 송 승호 이사와 극적인 만남으로 이어져 나이키와 5년간 독점계약을 하게 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 태화고무 : 나이키의 영원한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에어 포스 1 하이를 최초로 개발 및 생산을 한 공장으로 유명한 태화고무. 그러나 한때 사라질 위기였으나 미국의 리테일 스토어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나름대로 NBA 선수들을 내세워 혁신적인 광고들을 하여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나이키가 생산 중지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의 볼티모어에 위치한 다운타운 라커룸과 신데렐라 슈즈, 찰리 루도 스포츠의 3곳의 리테일 스토어 덕분에 재발매를 하게 되었고 지금의 에어 포스 1 모델이 롱런할 수 있게 되었다.

 

- 동양고무 : 삼화고무와 나이키의 독점계약이 끝난 후, 나이키는 여러 한국 공장에 오더를 주게 되었다. 그러다 동양고무가 1980년에 사명을 화승으로 바꾸면서 합작을 하는데 화승 나이키를 출범했다. 특히 동양고무와 나이키의 관계는 정말 중요한 관계였다. 비록 나이키가 화승과 계약을 조기 종결했지만 당시 개발했던 모델을 보면 나이키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중요한 모델들을 담당했다. 바로 에어 조던 1(Air Jordan 1), 덩크(Dunk), 반달(Vandal)이다. 에어 조던 1, 덩크는 농구를 좋아하거나 패션에 민감한 젊은 층은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반달 모델의 경우 터미네이터 1에서 카일 리스가 벌거벗은 채로 과거로 돌아와 매장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신발을 집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모델이 바로 반달 하이 제품이다. 이런 굵직한 모델들을 개발했으나 아쉽게도 리복과 이중 계약 관계로 인하여 나이키와의 관계가 일찍 끝이 났지만 나이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 대양고무 : 대양고무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아디다스와 꽤나 굵직한 모델들을 담당했다. 물론 대양고무는 자사 브랜드인 슈퍼카미트를 대부분 생산했고 자회사 대봉이 아디다스를 주로 생산했다. 바야흐로 2년 전 아디다스에서 자신들의 걸작 모델인 ZX 토션을 레트로 시키면서 올해 이큅먼트 프로젝트 30주년 일부 모델들을 발매한 것인데 이 모델들 중 대다수의 제품이 대봉의 작품이다. 특히 아디다스 토션이 최초로 들어간 ZX 토션 모델을 필두로 1991년과 1993년에 발매한 모델들은 아디다스가 다시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프로젝트인 이큅먼트 시리즈의 러닝 부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다. 혁신적인 디자인인만큼 당시 개발에 공을 들인 덕분에 지금도 국내를 비롯한 해외 스니커즈 마니아 그리고 아디다스 본사에서 잊을 수 없는 모델이기도 하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