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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① 신발의 길
작성일 2021-06-10 조회수 1905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① 신발의 길

2021-06-10 1905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 신발의 길

 

두고두고 기억하고 기려야 할 길

 

동길산 시인

 

 


 

  * 부산진구청 인근 진양사거리에 있는 신발 동상. 1980년대 부산이 한국은 물론 세계 신발산업의 중심지였음을 밝힌다.   사진 제공, 박정화 사진가


 


 

   * 범천동 삼화고무 자리 맞은편에 있는 삼화고무 여공 기숙사의 현재 모습. 주린 배 참아가며, 하고 싶은 공부 참아가며 동생들 공부시키고 집안 일으켜 세운 누나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여기의 우리가 있다.   사진 제공, 박정화 사진가

 

  부산진구청 근처에는 생긴 게 특이한 동상이 있다. 신발 동상이다. 진양사거리에 있는 이 동상은 워낙에 특이하고 황금빛 번쩍거려 멀리서도 표가 난다. 모르는 사람은 신기한 정도로만 여기고 지나치지만 아는 사람은 여기 이런 동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맙다. 

  그러고 보면 사거리 이름 ‘진양’도 신발에서 따온 이름이다. 사거리 인근 디지털플라자, 외식1번가 일대가 수출 중심 신발 대기업으로 끗발 날리던 진양화학 자리였다. 진양화학도 그렇고 부산진구는 1980년대 한국 신발산업의 중심지였다. 당대 한국을 대표하던 신발 대기업 일곱 군데 가운데 국제상사를 빼고는 모두 부산진구에 있었다. 

  신발 동상은 그것을 기념하고 기리는 표상이다. 동상 제막식은 2015년 3월 11일, 따뜻한 봄날 있었다.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 부산을 먹여 살리고 한국을 먹여 살리던 신발산업이 굴뚝산업으로 폄훼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던 당시 하계열 부산진구청장의 의지가 황금빛 신발 동상으로 이어졌다. 

  ‘부산진구가 신발산업의 중심이었음을 뒤돌아보며 더 큰 걸음으로 우리의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는 의지의 표상을 여기에 세웁니다.’ 

  동상 아래 표지석 문구다. 문구는 부산진구가 신발산업 중심지였음을 확고하게 밝힌다. 195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전후까지 부산진구는 그냥 중심지가 아니었다. 한국의 중심지였고 세계의 중심지였다. 

  1980년대는 특히 더 그랬다. 부산진구 신발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하던 고급 운동화는 이탈리아의 구두, 대만의 플라스틱화(靴)와 함께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부산진구의 신발은 한국의 신발이었고 세계의 신발이었다. 세계 넘버 원, 세계 챔피언 신발이 ‘메이드 인 부산진구 고급 운동화’였다. 

  부산진구 신발 대기업 맏형은 삼화고무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범천동에 있었다. 부전동 부산상고 인근 보생고무도 일제강점기 기업이었다. 가야동 태화고무와 당감동 동양고무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피난 온 기업이었다. 부암동에는 국제고무와 형제 기업인 진양화학이 있었고 전포동에는 대양고무가 있었다.   

  진양은 회사명이 특이했다. 다른 기업은 ‘고무’가 들어간 반면 진양만 유독 ‘화학’을 썼다. 1962년 신발 수출의 길이 트이자 국제고무가 수출 전문기업으로 1963년 설립한 회사가 진양화학이었다. 

  그때 그 승승장구하던 신발 대기업은 현재 부산진구에 하나도 없다. 그 자리엔 대부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보생고무 자리에는 부산 최고의 번화가답게 고층 상가빌딩이 들어섰고 진양화학 자리에는 앞서 말한 디지털 상가나 식당이 들어섰다. 그나마 태화고무는 다행이다. ‘태화 현대아파트’ 이름으로나마 남아서 그 시절을 반추한다.   

  이따금 그 시절을 반추하며 걷는다. 혼자 걸을 때도 있고 가이드가 되어서 걸을 때도 있다. 이름 붙여 ‘1980년대 신발의 길’이다. 당감동 동양고무 자리에서 시작해 신발 동상과 진양화학을 거친다. 태화고무는 경부선 기찻길에 막혀 눈인사만 건넨다. ‘신발의 길’ 걷기는 부산시민공원, 대양고무, 보생고무, 삼화고무를 거쳐서 삼화고무 여공 기숙사에서 끝나거나 국제고무가 있던 범일동 부산진시장 맞은편 주차장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1980년대 신발의 길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기려야 할 길이다. 가진 거라곤 근면성실뿐이던 시절, 부산을 먹여 살리고 한국을 먹여 살리던 길이 이 길이었으며 물설고 얼굴 선 객지에서 주린 배 참아가며, 하고 싶은 공부 참아가며 동생들 공부시키고 집안 일으켜 세운 누나의 길이 이 길이었다. 이 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여기의 우리가 있다. 

dgs1116@hanmail.net 

  

 

  동길산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이 부산진구에 있던 신발 대기업 삼화고무였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여섯 권과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부산진구 신발 이야기>, <100가지 서면 이야기>, <옛날 지도로 보는 부산진구> 등의 책을 냈다. 현재 부산진구신문에 ‘부산진이야기’와 부산시보 다이내믹부산에 ‘부산 나들이’를 연재 중이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