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人

제목 창의적인 운동화 디자인[기획기사]
작성일 2022-09-02 조회수 1630
창의적인 운동화 디자인[기획기사]

2022-09-02 1630


창의적인 운동화 디자인[기획기사]


미국 나이키독일 아디다스 본사에서 신발 디자이너로서 다년간 유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성호동 대표(신발 브랜드 수피어(suphere) 대표)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배워보도록 하자현재 성호동 대표는 수피어 브랜드 대표이자 신발산업진흥센터 인력양성사업의 신발 디자인 관련 강의를 진행했다.

 

더 이상 베끼기를 그만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해야 하는 이유

 

 저는 미국 나이키와 독일 아디다스 본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력 때문에 국내 디자이너 및 운동화 관련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자주 받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인에 대한 질문입니다. 답변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건 바로 ‘상상의 힘’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 중 한 명인 아인슈타인도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라고 했습니다. 제가 국내 10여 개 크고 작은 브랜드에서 디자인/컨설팅하면서 실제 경험했었고, 특히나 실무자/디자이너들이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도, 경영진에서 이에 대한 뒷받침이나 인정을 해주지 않는 부분은 더욱더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모방만 하다 보면 그 브랜드 매출의 상당 부분이 디자인 카피 제품들에 의존하게 되고, 브랜드 정체성이나 이미지는 하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베끼기는 습관입니다. 자꾸 베끼다 보면 우리 내면에 있던 창조력은 퇴화할 뿐입니다. 개인이 모방을 계속하다 보면 창의력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이 퇴화하고, 회사가 모방을 일삼게 되면 창의적인 직원들은 나가게 됩니다. 

 

서커스단 코끼리는 어릴 때부터 한쪽 발을 줄에 묶어 말뚝에 고정해 키웁니다. 커서 몸집이 3배 이상 되고 작은 미니버스쯤은 우습게 넘겨버리는 힘을 갖게 되어도 사육사가 한쪽 발을 끈으로 묶으면 말뚝을 뽑아버릴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아예 모르는 코끼리처럼, 모방을 계속하는 사람도 자신의 창조력을 아예 잊고 살게 됩니다.

 

1. 원인: 우리나라 운동화 디자인이 베끼기에 치중한 이유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공장에 작업지시서를 전달할 때, 왜 이건 이렇게 디자인되었는지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되고 어떤 식으로 테스트 되어야 하는지는 아주 구체적으로 전달합니다. 다시 말해, ‘why’에 대한 설명은 없고, ‘what’, ‘how’에 대한 설명만 합니다. 이런 소통/전달/명령 프로세스가 갑을 관계에서 계속되다 보니, 대부분의 OEM 업체에서는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고, 생각하는 힘과 상상하는 방법을 점점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나이키, 아디다스에서 모든 운동화가 상상력의 극치로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수조 원 가치의 글로벌 브랜드도 결국은 이익을 창출하려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근본이기 때문에, 상상력이나 R&D가 최소로 필요한 레트로 모델들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fast fashion 아이템들을 줄줄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델들이 결국 상상력의 극치를 현실화하는 Top tier 모델들의 R&D 자금을 제공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결국 why를 생각하지 못하면 근본적인 문제와 질문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해답을 찾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상하는 힘을 키울 수 있을까요? 운동도 종목이나 주요 사용 근육에 따라 효과적으로 훈련하는 방법이 있듯이, 상상하는 법과 창조력도 당연히 훈련이 가능합니다.  

 

2. 디자이너를 포함한 실무자라면? 

 

 상상하고 창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정관념 없애기’입니다. 운동화 디자이너에게 어떤 고정관념이 있을까요? 저의 고정관념을 예를 들자면, ‘러닝화에서 발가락을 잡아주는 오버레이 패턴이 꼭 있어야 한다’, ‘힐카운터가 단단하게 잡아주도록 보강재를 삽입해야 안정성이 높아진다’, 등이 있었습니다. 발가락을 잡아주는 오버레이 패턴은 어떤 러너에게 불필요하고, 오히려 앞발 유연성에 방해가 돼서 단순 엔지니어 메쉬나 니트로 간결하게 디자인된 갑피를 선호하는 러너들도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저 누군가에 의해서 주입된 고정관념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발뒤꿈치 뼈가 평균 이상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사람들과 내외전이 없는 중립 러너들 중 특히 미드/포어풋 러너들에게 단단한 힐카운터가 꼭 필요하지는 않더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힐카운터’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하나씩 노트에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정관념을 인지했다면, 이제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사실상 더욱 그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상기 예를 들었던 코끼리를 앞으로 3분간 절대로 상상하거나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더더욱  생생하게 코끼리가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실상 다른 생각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디자이너는 롤플레이(role play)를 하면서 자신이 소비자/타겟마켓이 되어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성격이나 제스쳐 등을 연습하듯이, 디자이너가 자신의 고정관념을 잠시 내려놓기에 롤플레이처럼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로 새로운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고정관념들은 잊혀집니다. 새로운 운동화를 디자인할 때, 이 운동화를 신고 운동을 할 소비자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페르소나/타겟마켓 시나리오를 정리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부캐(부캐릭터)를 이용하는 것도 새로운 발상을 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요즘 연예인들이 자신만의 부캐를 이용해서 다양한 재능을 선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은 옷차림이나 장소의 변화만으로 생각과 말투가 달라듯이, 자신이 지금까지의 디자이너 경력과는 사뭇 다른 부캐를 만들어 일정 시간과 장소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예시: 난 8년 차 운동화 디자이너로 현재 모 스포츠 브랜드에서 일한지 5년째인 김누구이다. 몇 년 동안 비슷한 디자인과 트렌드만 쫓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진듯하고 내 진짜 능력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부캐인 ‘상상왕’으로 변신해서 소비자/페르소나의 관점으로 눈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오늘은 새로운 테니스화의 페르소나인 ‘테린이 김소희’의 관점으로 30대 초반 직장인이자 너무 둔탁해 보이는 기존 테니스화를 싫어하는 관점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내가 이제껏 그렸던 스케치들이 상당히 마초스러웠던 패턴들로 가득 차 있었던 걸 발견했다. 

여기서 자신이 지금까지 그려왔던 마초스러운 패턴들이 고정관념이었고, 문제 해결의 시도를 가로막았을 뿐입니다. 

 

 상상을 제대로, 잘 하려면 눈을 감고 조용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상상을 하려고 하면서 눈을 뜨고 있다면, 너무도 직접적인 시각 정보가 뇌로 전달되어서, 보이는 것 이외의 상상을 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 집니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명상이 처음이라면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고, 잠들 수도 있는데,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겁니다. 어떤 문제해결을 이성적/논리적으로 하려는 것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 및 고정관념을 위주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면상태나 잠이 들려고 하는 상태, 혹은 자각몽 상태, 즉 무의식중에는 뇌가 세타나 델타파 상태로, 창의적이거나 특이한 발상을 하는 데 최적화된 상태라고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이나 수많은 창의적인 인물들은 이 방법을 오래전부터 알았으며, 각자의 방법으로 루틴화 하였으며, 성공적인 결과물들을 산출했습니다. 고민이 있거나 문제를 정해진 시간에 풀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가득하고 긴장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힘듭니다. 하지만 샤워를 하다가, 멍 때리면서 쉬고 있다가, 가볍게 한잔하다가, 편안한 상대방과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우리의 뇌가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쉬운 상태이기 때문이죠.  

 

3. 브랜드/ 회사/ 팀 오너/ 매니저 직책이라면? 

 

 상기 방법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직책의 누구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거나 경영을 하는 직책이라면 제일 먼저 열린 마음으로 창조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창의력을 북돋기 위한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아이디어 창출을 위한 워크샵이나, 고리타분한 방식의 미팅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정신적, 시간적, 금전적 지원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실패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디어 도출 단계에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면, 새싹이 올라오기도 전에 잘라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충분히 나온 후, 선택과 집중을 할 시기에 득실 및 장단점을 따져서 성공/실패 가능성을 논의해도 충분합니다. 

 

 직원이 미팅룸에서 요가 매트를 깔고 누워서 명상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이디어 회의에서 상하관계에 신경 쓰기보다는 즐거운 음악과 함께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영진의 리더쉽으로 회사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창의적인 마인드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직장상사나 꽉막한 회사 분위기때문에 꽃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4. 결론은? 

 

 미국 문화의 큰 별인 마야 앤절로는 “창의력은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쓸수록 샘솟는다”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창의력은 쓰지 않으면 약해지고 결국은 없어집니다. 여러분도 잠재돼있던 내면의 창의력을 하루라도 빨리 깨워보시기 바랍니다. 

 

 

성호동 : 미국 나이키 본사 러닝/ 조던/바스켓볼 디자인, 독일 아디다스 본사 이노베이션팀 시니어 디자이너, 인더슈 디자인 컨설팅 부사장역임. 19년동안 전세계 20여개 브랜드에서 400개 이상 프로젝트 진행해왔고, 현재 수피어 운동화 브랜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