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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오래된 기술의 반격(초임계발포), 신발 산업의 혁신은 왜 과거에서 시작되는가?
작성일 2026-04-06 조회수 791
[칼럼] 오래된 기술의 반격(초임계발포), 신발 산업의 혁신은 왜 과거에서 시작되는가?

2026-04-06 791


오래된 기술의 반격(초임계발포), 신발 산업의 혁신은 왜 과거에서 시작되는가?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때를 기다릴 뿐이다
[생성형 AI 이미지]

최근 신발 산업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초임계 발포’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CO₂나 N₂를 활용한 물리 발포 공정은 친환경성과 고성능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기술로 평가받으며, 특히 러닝화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두고 단순히 ‘새로운 혁신’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지점이 있다. 초임계 발포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기술이 아니라,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존재해왔던 공정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왜 이 기술은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머물러 있다가, 지금에서야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일까.

그 답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기술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환경과 산업의 요구가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발 산업에서의 혁신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서 출발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기술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 ‘재발견’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초임계 발포, 환경과 성능이 동시에 요구된 순간
초임계 발포 기술은 화학 발포제를 사용하지 않고, 고압 상태의 CO₂나 N₂를 활용하여 소재 내부에 미세한 셀 구조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공정은 잔류 화학물질이 거의 없고, 비교적 균일한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기술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공정의 난이도와 비용 부담 때문에 제한적으로만 활용될 수밖에 없었고,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신발 산업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분명하게 달라지고 있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화학 발포제에 대한 부담이 커졌고, 동시에 러닝화 시장에서는 단순한 쿠셔닝을 넘어 에너지 리턴과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자동화 설비와 공정 제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어렵게 느껴졌던 생산 방식이 점차 현실적인 선택지로 바뀌고 있다.

결국 초임계 발포가 다시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하나의 기술적 돌파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환경과 성능, 그리고 생산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맞물리게 된 산업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생성형 AI 이미지]
TPU 발포, 한때 외면받았던 기술의 재등장

TPU 발포 역시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TPU 소재를 활용한 발포 기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무게와 비용이라는 문제로 인해 시장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러닝화 시장에서 쿠셔닝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가벼운 신발이 아니라, 착용 시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고, 이 과정에서 TPU 발포는 다시 한 번 의미 있는 선택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아디다스의 Boost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기존에는 단점으로 여겨졌던 특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기술의 가치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끌어올렸다.

이 사례는 신발 산업에서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떤 기술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자체의 한계 때문이기보다는, 그 기술이 필요로 되는 시점이 아니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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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BA, 산업 소재에서 퍼포먼스 소재로의 전환

PEBA 역시 비슷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재는 원래 항공이나 산업용으로 사용되던 고기능 소재로, 가볍고 탄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격과 가공성 문제로 인해 신발 산업에서는 제한적으로만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탄소섬유 플레이트와 결합되고, 여기에 초임계 발포 공정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기존 소재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수준의 경량성과 반발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PEBA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 퍼포먼스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하나의 소재가 단독으로 혁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기술과 소재가 연결되면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졌고, 그 조합이 시장의 요구와 맞아떨어졌을 때 비로소 산업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탄소섬유, 소재가 아닌 구조로서의 역할

탄소섬유 역시 오래전부터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어 온 소재지만, 신발에서는 오랫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단독으로는 성능을 극대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반발 폼과 결합되면서 탄소섬유는 전혀 다른 역할을 갖게 되었다. 단순한 보강재가 아니라, 에너지 흐름을 제어하고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요소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신발 산업에서 혁신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재 자체의 성능이 아니라, 그 소재가 어떤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신발은 단순한 소재 산업이 아니라 설계와 구조의 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ESG와 정책이 만들어낸 또 다른 흐름

최근에는 재생 EVA, 바이오 EVA, 물리 발포 기술 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 이 역시 기술 자체의 새로움보다는 산업 환경의 변화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비용과 생산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탄소 배출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공급망 전반에 걸쳐 환경 영향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기술들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

결국 신발 산업은 더 이상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내는 제조 산업이 아니라, 환경과 정책,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반응하는 복합적인 시스템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를 다시 보는 순간, 미래가 시작된다

초임계 발포, TPU, PEBA, 그리고 탄소섬유에 이르기까지, 지금 신발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 기술들이 모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기술들이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이 시대가 그 기술들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발 산업의 혁신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연결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가깝고, 이러한 흐 름은 언제나 산업의 변화와 맞물리며 움직여 왔다. 지금 우리는 탄소 저감, 고성능 경쟁, 그리고 자동화라는 세 가지 흐름이 동시에 교차하는 시점에 서 있으며, 이 변화 속에서 과거의 기술들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며 다시 산업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글로벌 브랜드나 특정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역 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오랜 시간 신발 산업의 기반을 다져온 부산의 경우, 과거 생산 중심의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공정, 그리고 소재를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부산은 산업체뿐만 아니라 대학, 연구소, 그리고 공공기관이 함께 존재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의 생산 경험과 기술을 보유한 기업,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기술을 실증하고 고도화할 수 있는 연구소, 그리고 정책과 지원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단일 주체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시너지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실제 제품과 시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결국 기존의 제조 인프라와 축적된 기술 경험 위에 초임계 발포와 같은 공정 혁신, 자동화 생산, 친환경 소재가 더해지고, 여기에 산학연관 협력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된다면, 부산은 단순한 생산 거점을 넘어 신발 산업의 변화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로 확장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결국 신발 산업에서의 혁신은 미래를 바라보는 데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하며, 그 시선이 어디에 머무르느냐에 따라 산업의 기회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변화는 부산 신발산업에도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주필 : 이일형
지오힐 대표/경남정보대학교 신발패션과 겸임교수

검수 : 김효준, 박건욱 (한국소재융합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