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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디자이너 스토리 - 피터 무어[기획기사]
작성일 2022-05-27 조회수 1079
디자이너 스토리 - 피터 무어[기획기사]

2022-05-27 1079


 

 지난 4월 29일 에어 조던 1, 덩크 디자이너로 알려진 피터 무어가 타계했다이에 글로벌 브랜드의 디자이너를 비롯하여 여러 브랜드 및 임원진들은 애도를 전했다이러한 신발 산업에 큰 족적을 남긴 피터 무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나이키

 

1-1 나이키와 관계

 

나이키는 1977년에 피터 무어의 디자인 에이전시 고객으로 만났다그러던 중 1983년 피터 무어는 나이키에 정식 입사를 하게 되고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다. 1987년 나이키에서 퇴사 전 4년 동안 에어 조던 하이덩크 하이 등의 제품을 디자인하였으며 조던 브랜드의 기반을 다지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

 

1-2 덩크 하이와 에어 조던 하이

 

1984년 피터 무어는 덩크 하이와 에어 조던 하이를 디자인하면서 NBA와 미국 대학농구리그 대다수의 선수들이 착용하던 신발 컬러인 흰색검은색의 틀을 깨트리고자 했다이러한 이유로 덩크 하이에는 미국의 농구 명문으로 유명한 각 대학교의 컬러를 사용했고 조던 1에는 시카고 불스의 프랜차이즈 컬러인 레드와 블랙화이트를 가져와 담아냈다그 결과 덩크 하이는 미국 대학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좋은 호응을 얻었던 반면 마이클 조던은 이러한 컬러가 적용된 에어 조던 1을 보며 달가워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자신의 모교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라이벌인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의 메인 컬러란 점과 지금까지 NBA 선수들이 신지 않았던 컬러의 신발을 이유로 들 수 있다그럼에도 마이클 조던은 에어 조던 시카고브레드 모델을 착용하며 1985년에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신인왕을 거머쥘 수 있었고 이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색상인 스카이블루와 화이트 컬러가 적용된 제품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여 UNC 컬러가 나오게 되었다비록 정규 시즌에는 착용하지 못했지만유럽 투어에서 이 컬러의 제품을 신었으며 모교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3 
윙 로고와 점프맨 로고

 

윙 로고는 나이키의 부사장 겸 마케팅 이사였던 롭 스트라서와 조던의 에이전트였던 데이비드 포크와의 회의에서 '에어 조던'의 브랜드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데이비드 포크는 피터 무어에게 '에어 조던'이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이후 피터 무어는 이름을 로고에 반영하기 위해 나이키 본사로 돌아가던 비행기에서 스케치를 하던 중어린아이의 셔츠에 달려있는 비행기 날개 기장의 플라스틱 기념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이러한 윙 로고 다음으로 에어 포스 디자이너인 브루스 킬 고어(에어 포스 디자이너)와 함께 새로운 로고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데 마이클 조던이 덩크하는 장면을 모티브로 점프맨 로고가 탄생하게 되었다이후 이 로고는 팅커 햇필드가 조던 3에 적용시켜 조던 브랜드의 정식 로고로 완벽히 자리 잡게 된다.

 

 

2. 아디다스

 


2-1 
나이키에서 퇴사 그리고 비즈니스

 

1987년 피터 무어는 자신과 좋은 관계를 지니고 있던 마케팅 이사였던 롭 스트라서와 함께 나이키에서 퇴사하게 된다이후 롭 스트라서와 줄리 스트라서(롭 스트라서의 부인)와 함께 스포츠 브랜드 컨설팅 비즈니스 회사인 Sports Inc를 설립하게 되었다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디다스가 마이클 조던을 데려오길 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신생 브랜드이던 밴그랙 브랜드로 데려 오길 원했다당시 피터 무어와 롭 스트라서는 사업가인 마크 밴 그랙과 제휴하여 밴그랙 브랜드를 런칭했기 때문이다반그랙 브랜드를 운영하던 중 아디다스는 나이키의 성장을 견인했던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자 Sport Inc와 접촉하게 되었다.

 


2-2 
아디다스의 부활과 EQT

 

1991년은 아디다스의 해였다그동안 아디다스는 동독과 서독의 통일과 운동선수 전용의 고리타분한 디자인으로 인한 판매 부진미국 시장의 나이키 에어 맥스와 리복 펌프의 약진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었다이러한 부진을 금치 못하던 아디다스가 피터 무어와 롭 스트라서의 도움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시금 마련한 해이자 새로운 프로젝트였던 EQT(EQUIPMENT 약자)를 선보였기 때문이다이 프로젝트는 아디다스 창업주인 아돌프 다즐러가 생전에 추구하던 철학인 Only The Best For The Athlete을 차용하여 The Best Of Adidas라는 슬로건으로 사용했다성능과 보호편안함에 초점을 맞춰 선수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이전에 사용하던 트레포일 로고 대신 별도의 EQT 로고 및 색상제품의 품질에 중점을 두어 브랜드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새로운 브랜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아디다스는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제품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중 러닝 제품군은 쿠션가이던스서포트레이싱과 같이 세분화를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했다이러한 피터 무어가 주장해왔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문제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를 통하여 아디다스는 그동안의 문제를 개선하고 나아갈 수 있었던 계기로 볼 수 있었다.

 

2-3 아디다스 미국 본사 설립과 롭 스트라서의 사망

 

1993년 아디다스는 피터 무어와 롭 스트라서 덕분에 브랜드 재건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운영하던 Sports Inc를 인수하여 아디다스 미국 본사를 설립하게 된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고의 파트너이자 아디다스 미국 본사의 CEO이던 롭 스트라서가 10월 독일 출장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그로 인해 피터 무어는 사장으로 진급했지만얼마 후 사장 자리를 내려온 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복귀했다.

 

 


은퇴 그리고 행보

 

아디다스 미국 본사에서 컨설팅 및 임원으로서 활동하던 중 1998년 피터 무어는 아디다스에서 퇴사 및 은퇴를 하였다이후 What'a Ya Think Inc를 설립하여 아디다스발리의 브랜드 컨설턴트 자문과 후임 양성을 해주는 역할을 이어왔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예술 활동을 염두에 두었던 피터 무어는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비용 문제로 캘리포니아의 슈나드 아트 인스티튜트(현재 캘리포니아 예술 학교와 통폐합)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였으며 나이키에서 신발 디자인 이외에도 포스터나 캠페인 제작매년 지인들에게 그 해의 이슈 사건을 담은 크리스마스카드를 40년 동안 직접 만드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예술 활동을 진행했다특히 주를 이루었던 실크 스크린 작업을 토대로 사회정치논쟁에 대한 부분을 담아냈으며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2013년에는 포틀랜드 갤러리에서 그의 실크 스크린 전시회를 여는 등 꾸준한 행보를 이어왔다. 2013년도 전시회의 인상 깊은 작업물을 고르라고 한다면 “Islam Are You Listening”이 단연코 눈에 띄었다아직도 이슬람교의 여성인권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시각적으로 단순 명료하게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었으며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전설 그 이후

2022년 4월 29일 신발 산업에 큰 획을 그은 피터 무어는 가족들 품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동안 지병으로 앓고 있던 파킨슨병과 메니에르병이 원인으로 예상된다이번 피터 무어의 타계로 많은 디자이너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그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나타냈으며 그의 철학과 가르침을 배운 것에 대하여 감사와 자부심을 표했다.

 

 

 

여느 신발 디자이너보다 알려진 부분이 드물었던 피터 무어의 행보를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보았다이번 칼럼을 통해 그의 철학과 행보는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후배들의 귀감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디자이너였던 피터 무어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