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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㉕ 한국과 나이키(1)
작성일 2022-11-26 조회수 1055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㉕ 한국과 나이키(1)

2022-11-26 1055


신발이바구한국과 나이키(1)

 

CITC와 나이키  

 

  한국에서 맨 처음 나이키를 만든 데는 어딜까? 거기를 밝히기 전에 ‘대부(代父)’ 이야기를 먼저 하자. 알 파치노 주연의 마피아 영화를 말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부는 조너스 센트. 알 파치노가 이탈리아계라면 조너스 센트는 유태계였다. 그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미국 신발업계 대부로 군림했다. 

  조너스 센트는 CITC사 회장으로 있었다. CITC사는 일본 미쓰비시상사의 자금과 수입절차 지원을 받는 수입상이었다. 이 무렵 한국에서 미주로 나가는 수출물량 90% 이상이 CITC사를 통했다. 그러므로 한국 신발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CITC사의 애초 거래처는 일본이었다. 1960년대 초까지 일본과 거래했다. 그러다 1962년부터 거래처를 서서히 한국으로 옮겼다. 그해부터 1970년대 후반 2차 오일쇼크가 날 때까지 해마다 한국 거래량을 늘렸다. 거래의 중심에는 국제상사가 있었다. 

  조너스 센트는 한국을 각별하게 여겼다. 한국에 오는 걸 즐기기도 했다. 한국의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신의 경영 이념과 맞아떨어졌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한국 신발업계에 수시로 새롭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대 중반 한국 정부 표창까지 받는다. 

  미국 군소 신발 판매상 역시 조너스 센트의 눈치를 봤다. CITC를 통해 한국 신발을 공급받았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군소 판매상은 자금력도 문제였지만 CITC를 통하지 않고선 클레임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클레임 해결은 원정희가 도맡았다. CITC 한국 총책으로서 조너스 센트와 친밀했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다. 클레임이 발생하면 미국 바이어에게 한국 측의 입장을 대변했다. 오더 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1928년생이며 1980년대 동래구 럭키아파트 거주했다. 

  CITC는 1978년을 고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내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CITC가 한국과 거래하던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에 한국은 미지의 나라였다.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CITC는 이것을 이용했다. 미국으로 수입하는 신발의 가격과 재고의 적정선을 무시하고 터무니없이 책정했다. 미국 군소 신발업자들이 알 턱이 없었다. 

  1970년대 후반 들면서 상황이 변했다. 통신수단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산과 가격 정보 등 현지 상황을 공유하게 되었다. 미국 현지 업자들은 CITC를 통하지 않고 ‘직구’에 나섰다. CITC는 자금난으로 허덕였으며 금융을 지원하던 미쓰비시는 1979년 CITC를 흡수했다. 이후 CITC는 역사의 뒷마당으로 사라졌다.   

  CITC는 사라졌지만 직원들은 사라질 수 없었다. 그들은 그간 다져온 경험과 한국 인맥을 기반으로 여기저기 독립 회사를 차렸다. SANSHOE, POLO, ROYCE, PONY, MERCURY BBC, LINEAN 등이 이때 생겨난 바이어다. 

 

 

PONY 신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미국 신발업계를 장악했던 CITC사가 사라진 이후 CITC 직원들은 개별적으로 바이어로 나섰다. PONY가 그런 회사다. 나이키 성장은 CITC 쇠퇴와 궤를 같이한다. 

 

  CITC의 몰락은 거대 바이어의 한국 진출로 이어졌다. 나이키와 리복의 한국 진출이 CITC의 쇠퇴와 궤를 같이했다. 나이키는 CITC가 몰락하기 이전에, 리복은 몰락한 이후에 한국 신발업계의 문을 두드렸다. 나이키는 대량생산에 앞서 한국 신발의 품질, 디자인, 생산능력 등 가능성을 탐색했다. 

  나이키가 한국 신발업계의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1974년 8월께였다. 1976년에는 서울의 삼양통상과 거래를 텄다. 일본, 대만과 거래를 해 오던 나이키는 한국 신발업계를 체크할 당시만 해도 보따리장수를 막 벗어난 수준이었다. 한국 업체도 CITC 영향력에 눌려 나이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4년 8월께. 그러므로 한국에서 맨 처음 나이키를 만든 데를 알아보려면 이 1974년 8월께 나이키를 만든 곳이 어딘지 알면 된다. 나이키 자서전 <슈독>에는 언급이 없지만 공중파 방송에는 이와 관련한 언급이 남아 있다. 부산경남 지역민방 KNN이 2016년 특집으로 방송한 ‘다큐 한국신발사’(박준석 PD)가 그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