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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⑲ 동천과 신발❶ | ||
작성일 | 2022-06-10 | 조회수 | 866 |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⑲ 동천과 신발❶
2022-06-10 866
신발이바구⓳동천과 신발❶
부산 신발, 도심 하천 끼고 성장하다
동천은 도심 하천이다. 도심에 있다 보니 상처를 꽤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 피란민 천막촌과 전쟁포로 수용소, 육군형무소가 들어서고 하면서 오폐수 하천으로 전락했고 1970년대는 산업화의 희생양이 되었다. 물 좋고 풍광 좋던 동천은 졸지에 ‘똥천’이 됐으며 여기를 지나려면 악취 탓에 코를 싸매야 했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동천은 살아 있었다. 배가 다녔다. 그것을 증명하는 기록이 대전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다. 배가 다닐 정도로 동천이 살아 있었기에 동천 주위에 큰 기업이 모여들었다. 범일동 조선방직, 문현동 대선양조 등이 한 세기 전 동천 주변에 있던 대규모 기업이었다.
신발도 그랬다. 큰 공장은 동천 주변에 있었다. 범일동 삼화고무가 그랬고 부전천을 낀 부전동 보생고무 역시 넓게 보면 동천 주변이었다. 동천에 배가 다녔다는 사실은 지명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천 상류에 해당하는 지역인 전포동을 한자로 쓰면 田浦洞. 지금은 도심이지만 그 옛날에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였다는 이야기다.
대전 국가기록원 문서는 더욱 확실한 증거다. ‘설마 배가?’ 어깃장을 놓은 이에게 ‘100% 그렇다’며 대못을 꽝꽝 박는다. 기록의 제목은 <부산진 동천 운하 준설에 관한 진정서>다. 1936년 동천 주변 다섯 업체가 동천에 쌓인 토사를 준설해 달라며 부산시에 진정한 문서다. 부산진구청이 2010년 발간한 <옛 사진으로 보는 서면이야기> 30쪽과 31쪽에 진정서 사진과 원문이 실렸다.
(1, 2번 사진) 1936년 동천 하구 주변의 다섯 기업이 당시 부산시장이던 부산부윤에게 보낸 <부산진 동천 운하 준설에 관한 진정서>. 배가 다니지 못할 만큼 토사가 쌓였으니 준설해 달란 내용이다.
다섯 업체는 당대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다음과 같다. 조선방직, 청수정미소, 대이상회출장소, 성초자(星硝子)제조소, 대선양조. 지금 기준으론 ‘이런 회사도 있었나’ 싶겠지만 한 세기 전의 기업 풍속도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지금과는 백팔십도 달랐다. 이들 기업은 입김이 대단했던지 조선총독부 전용 백지를 진정서로 사용했다.
진정 내용은 제목 그대로 준설이다. 동천에 홍수 등으로 떠내려온 토사가 많이 쌓이는 바람에 기업 활동에 필요한 물동량 이송이 어려우니 준설해 달라는 내용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동천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므로 진정서 전문을 싣는다. 원문은 일본어다.
(3, 4번 사진) <부산진 동천 운하 준설에 관한 진정서>와 같은 시기, 같은 내용으로 부산공수(工水)출장소장에게 보낸 진정서다.
우리 부산항은 국제교통의 요충에 있어서 해륙 운송편이 풍부한 천혜적 양항으로서 특히 만주국이 건설된 이후 또한 조선 내 모든 사업의 발흥에 따라서 더욱 그의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고 머지않아 기공하려고 하는 경부간의 신사업 철도와 이에 따르는 부산항으로서 그 발전이 기대되는 것임.
부산의 중요 공업지대 부산진은 동천 운하의 연안을 중심으로 하고 부산에 있어서 저명한 공장이 건설되는 것 및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 형세임.
동천 운하는 부산항만에 통하는 유일의 수로로서 부선(艀船)은 물론 2∼3백 톤 정도의 범선 과 발동선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어서 경제에 있어서 극히 유리한 운하임. 그런데도 매년 여름철에 여러 번의 큰비로 동천에서 유출되어 하류 운하와 항내에 퇴적하는 토사는 약 1만t 또는 그 이상으로 추측되어 이로 인해 동 운하의 교통두절뿐만 아니라 하구 멀리의 항내마저 매몰케 하는 상태에 있음.
이 연안에 이 수운을 이용하여 존재하는 연간 15만t의 운반화물을 보유하는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매년 동 운하의 상류 일부를 수천 원의 거비(巨費)를 투여하여 준설해 간신히 부선을 운항하여 왔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미 동 운하 전체에 이르러 다량의 토사가 퇴적하여 선박의 운행이 매우 곤란에 빠져 버려 그대로 방치하면 끝내는 매몰돼 버려서 동 운하의 이용은 전혀 불가능하게 되므로 이래서는 항구 부산의 해운 가치를 대단히 감쇄하고 특히 부산진 방면은 전술한 바 있는 부산에 있어서 공업지로서 동천 운하의 이용 여하는 여러 화물 운임에 지대한 관계가 있으므로 시급히 동 운하의 준설 방법을 심의하셔서 실시토록 배려하여 주시도록 이에 청원하는 바입니다.
소화 11년(1936) 5월 1일
조선방직주식회사, 주식회사 청수정미소, 주식회사 대이(大二)상회출장소, 성초자제조소, 대선양조주식회사.
부윤 귀하
부윤은 부산시장에 해당하는 일제강점기 직책이다. 동천 주변엔 큰 공장이 수두룩했다. 동명목재, 제일제당, 삼화고무 등이 동천을 끼고 성업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이들 기업이 동천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은 결코 간과할 수 없겠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동천이 있었기에 부산에 기반을 둔 대기업이 있었고 그런 기업이 있었기에 부산이 있었다. 부산을 오늘 여기에 이르게 한 혁혁한 공로자가 부산의 도심 하천 동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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