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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⑯ 별표 고무신
작성일 2022-04-24 조회수 685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⑯ 별표 고무신

2022-04-24 685


동길산 시인의 신발 이바구별표 고무신

 

한국 최초의 길거리 판촉

 

식당에서 소주 판촉팀을 곧잘 접한다. 마시는 소주와 같은 소주 판촉팀을 접하면 숙취 해소제 같은 판촉물을 받고 다른 소주 판촉팀을 접하면 다른 소주 한 병을 덤으로 얻곤 한다. 나는 생각지도 않은 덕을 봐서 좋고 판촉팀은 자사 소주를 현장에 바로 알려서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길거리 판촉은 우리 시대 풍속도로 자리잡았다. 불시에 맞닥뜨려도 낯설지 않고 어색하지 않다.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한쪽에선 가만히 앉아서 횡재를 보는 거고 다른 쪽에선 광고비를 별도로 들이지 않으니 길거리 판촉은 코로나 같은 비상시국만 아니라면 대를 이어서 오래오래 이어질 전망이다.

 

 

사진 설명

 

한국에서 최초로 길거리 판촉에 나섰던 일제강점기 중앙상공()의 고무신 광고. 선발주자인 대륙고무에 맞서기 위해 모양 좋고 질긴고무신을 강조했다

 

중앙상공주식회사. 한국에서 최초로 길거리 판촉을 시작한 회사다. 소주 회사는 아니고 고무신 회사였다. 지금은 고무신 하면 뭔가 구닥다리 느낌을 주지만 1920년 전후의 고무신은 천하의 인재가 모여들던 첨단산업이었다.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고려대를 설립한 호남 갑부 김성수 역시 고무신에 뛰어들었으니 그가 세운 회사가 중앙상공이었다. 중앙이란 상호는 김성수가 1915년 인수한 중앙고등보통학교와 연관이 있지 싶다.

중앙상공의 원래 상호는 경성직뉴(織紐)주식회사였다. 광목 제조회사였다. 재정이 어려워지자 김성수가 1917년 인수했고 이듬해 중앙상공으로 바꾸고 광목 제조에서 면(綿) 의류 직접 생산에 나섰다. 그러다 한국 최초의 고무신 공장 대륙고무가 19198월 창립해 승승장구하자 중앙상공도 가세해 각축전을 벌였다.

 

꼭 한 번만 신어주시오.

모양 있고 질긴 품으로 고무신 중에 제일!!

별표 고무

 

중앙상공은 1922년부터 고무신을 만들었다. 상표는 별표였다. 인터넷 검색하면 당시 신문 광고가 꽤 뜬다. 별표 고무신이 내세운 전략은 모양 있고 질긴 제품이었다. 전략의 대상은 대륙고무였다. 선발주자 대륙고무는 도무지 난공불락이었다. 디자인도 별로고 별표보다 덜 질겼지만 시장에선 대륙고무를 선호했다. 후발주자가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었다.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않는다.

고무신이 질기다 함은 별표 고무를 말함이요

고무신의 모양 좋은 것도 별표 고무가 표준이다.

 

광고는 별로 먹혀들지 않았다. 상대는 귀족 작위를 얻은 이가 경영하는 대륙고무고 이쪽은 총독부 요시찰 대상인 김성수였다. 알게 모르게 당국의 방해 공작도 적지 않았으리라. 고무신을 받아서 판매하는 장사치도 별표보단 대륙고무에 호의적이었다. 질기고 모양 좋다고 아무리 홍보해도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중앙상공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천하의 인재인 임직원이 머리를 맞댔다. 답이 나왔다. 답은 현장에 있었다. 중앙상공의 선택은 길거리 직접 홍보였다. 임직원이 별표 고무신을 들고 직접 시장에 나가 발로 팔기 운동을 전개했다.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시장에 직접 알리는 이벤트인 길거리 판촉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벌였다.

 

연조가 있는 신발기업인 대륙고무가 내놓는 대륙표 신발은 워낙 신용이 있었고 고무신 장사꾼들의 그와 같은 인식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해 냈다. 대륙고무의 대륙표를 말하는 장사꾼이 있으면 자기가 신고 있는 자사 제품의 고무신을 번쩍 들어 보였다. “이것 보시오. 이 신발이 우리 회사 신발인데 이제 6개월 신었소. 그런데 아직 새것과 다를 바 없지 않소?”

 

김성수 여동생의 남편 김용완이 회고한 내용이다. 김용완은 중앙상공 지배인 대리를 지냈다. 광복되고 훗날 전경련 회장을 여섯 차례나 지낸 천하의 김용완이었지만 손위 처남의 일에 무심할 순 없었다. 직접 시장에 나가서 발로 팔기 운동에 동참했다. 시장의 반응은 어땠을까.

다들 눈이 동그래졌을 것이다. 허우대 좋고 점잖게 생긴 양반이 신고 있는 고무신을 번쩍 들어서 핏대 올리는 모습이 누군들 그러지 않았을까. 그때 들어 올린 고무신은 하늘의 별이 되어 지금도 빛나고 있다. 판촉팀 남녀가 테이블에 놓고 간 소주 한 병이 그때 그 별 아니겠는가.

dgs1116@hanmail.net

 

동길산 시인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신발 대기업 주식회사 삼화의 기획부에서 근무하며 기획·홍보·사보편집 등의 업무를 봤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해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의 시집과 <우두커니> 등의 산문집을 냈다. 한국 신발 100년사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와 평전 <, 김지태> 등을 썼다.

국제신문·부산일보·한국일보에 부산의 길, 부산의 포구, 부산의 등대, 부산의 비석, 부산의 고개 등을 연재했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