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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나 이로스타일

[K쇼핑몰 코리아 실크로드 연다]"가격거품 뺀 웨딩슈즈로 행복한 결혼식 만드세요" 2018.09.10조회39

<임미나 이로스타일 대표>“고객 중에 선천적으로 두 다리의 길이가 조금 다른 예비 신부가 있었어요.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하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우시는 거예요. 결혼식만큼은 신부가 가장 행복해야 할 주인공인데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다리 길이에 맞춘 굽으로 맞춤 웨딩슈즈를 제작해 드렸더니 밝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웨딩슈즈 대중화를 표방하는 이로스타일의 임미나(41·사진) 대표는 6일 서울 논현동 본사 매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고객들이 만족하는 모습에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이로스타일은 방송·연예 스타일리스트 출신인 임 대표가 2012년 설립한 웨딩 스타일링 회사다.특히 고가였던 웨딩슈즈의 가격을 대폭 낮추고, 디자인도 다양화해 젊은 예비 신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임 대표는 “그동안 웨딩 슈즈는 가격이 비싸고 촬영과 본식 때를 빼면 신을 일이 없기에 대부분 빌려서 신었는데 디자인과 관리상태 불만이 가장 많은 아이템이었다”며 “가격 거품을 빼고 고객의 성향에 맞는 웨딩 슈즈를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임 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스타일리스트 출신답게 고객의 취향과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디자인의 웨딩슈즈를 만들기 시작했다.대부분의 가격대를 8만~10만원 선으로 맞췄다.임 대표는 “저렴한 가격 외에도 고객 맞춤형 제품을 만드는 것이 장점”이라며 “키 작은 신부에게 어울리는 슈즈부터 발볼 넓은 슈즈, 꽃무니가 장착된 슈즈까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만족도도 높다”고 설명했다.임 대표는 이로스타일의 웨딩슈즈를 신은 신부가 거울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그는 “가격이 비싸지 않다 보니 프로포즈 선물로도 우리 제품을 많이 선택한다”며 “예비 신랑 신부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사업을 하면서 쌓인 피로가 한방에 날아간다”고 웃었다.이로스타일은 해외진출도 진행하고 있다.카페24를 통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버전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2016년엔 홍콩과 대만의 한 오프라인 편집숍과 계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이로스타일은 지난해 웨딩드레스 브랜드 ‘스몰꾸띄르’ 도 론칭했다.임 대표는 “웨딩슈즈의 대중화를 이끈 것처럼 웨딩드레스에서도 겉치레를 없애 심플한 웨딩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2018-09-06 서울경제>

트렉스타

"중국서 22년, 500억 날렸다" 돌아온 '부산 신발맨' 트렉스타 권동칠 대표 2018.09.03조회188

22년 동안 중국에서 입은 손실만 500억원 부산 공장에 로봇 투입해 자동 생산 시스템 구축 OEM 업체에서 브랜드 제작사로 변신 "부산 신발맨이 돌아왔다."권동칠(63) 트렉스타 대표를 두고 국내 신발 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권 대표는 1988년 부산에 신발 회사 동호실업(현 트렉스타)을 설립했고, 연 매출 1000억원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1995년에는 인건비 문제로 부산을 떠나 중국 톈진(天津)에 공장을 세웠다. 트렉스타는 중국 진출 초기에는 성과를 냈지만, 2000년 중후반부터 중국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권 대표는 지난해 중국 공장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2년 동안 중국에서 입은 손실만 500억원이다. ▲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는 “한국 공장에 자동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체 브랜드를 강화해 제2의 도약을 하겠다”고 말했다./ 트렉스타 제공 그러나 트렉스타가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중국·베트남·미얀마에 있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에 제품 생산을 맡기고 있다. 한국 공장에선 일부 고급 등산화와 전투화만 생산한다. 아직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한국에서 모든 제품을 생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현재 트렉스타는 한국 공장에 로봇 6대를 투입한 자동 생산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권 대표는 "10월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며 "로봇을 활용한 자동 생산 시스템을 확대해 중국·베트남·미얀마 물량을 한국으로 가져올 계획"이라고 말했다.8월 30일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 내에 있는 트렉스타 본사에서 권동칠 대표를 만났다.- 1995년 중국에 진출했다."회사를 경영한지 7년이 지나자, 비즈니스 규모가 커졌고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인력 수급이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오르는 인건비도 문제였다.1994년 당시 부산 공장 근로자 수가 800명이었는데 1인당 월급이 140만원이었다. 반면 중국 근로자의 월급은 80달러(약 8만9000원)였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중국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중국 공장 이전 후 수출은 9000만달러(약 1000억원·1994년 부산 공장 기준)에서 1억5000만달러(약 1600억원)로 증가했다. 중국 공장에선 3000명의 근로자가 일했다."- 중국 공장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한국에서 쌓은 기술과 노하우가 있었다. 특히 생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당시 트렉스타는 OEM 업체였고, 생산한 제품 대부분은 해외로 수출했다. 우리가 생산하면 유통, 마케팅, 판매는 고객인 해외 브랜드사가 알아서 했다.중국 근로자도 열심히 일했다. 그들은 일이 많을수록 좋아했다. 그래야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인 나도 신이 나서 일했다. 해외 바이어도 늘렸고 물량도 계속해서 증가했다."- 그런데 왜 중국에서 철수했나."베이징올림픽이 열린 2008년부터 시행된 신노동법을 계기로 임금이 급격히 올랐다. 2016년에는 1인당 월급이 900달러(약 100만원)까지 치솟았다. 중국 정부의 세제 감면 혜택도 줄기 시작했다. 비용 부담이 커졌고, 더 이상 중국 공장을 가동하는 게 힘들다고 판단했다." ▲ 트렉스타의 부산 신발 공장 생산 라인(사진 왼쪽). 트렉스타는 로봇 6대를 투입해 자동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 50여명이 생산하던 하루 1500~2000켤레를 10명의 근로자가 감당할 수 있다.- 한국으로 생산 공장을 이전한 것인가."맞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모든 신발을 생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전히 인건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근로자의 월급은 165만~220만원이다. 과거 중국 공장에서 3000명이 하는 작업을 한국에서 다 할 수는 없다. 신발 공장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 만큼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도 없다.중국·베트남·미얀마에 있는 OEM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한국에선 일부 고급 등산화와 전투화만 생산한다. 특히 한국 군 등에 공급하는 전투화는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규제가 있다."트렉스타의 신발 제품은 등산화(워킹화 포함)와 군·관공서에 납품하는 전투화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지난해 기준 매출 비율을 보면 전투화가 60%, 등산화가 40%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아직은 그렇다. 하지만 로봇을 투입해 생산라인을 자동화하고, 한국 공장의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현재 로봇 6대를 투입한 자동화 생산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장비 설치는 완료됐고, 시스템 테스트를 하고 있다. 10월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 50여명이 생산하던 하루 1500~2000켤레를 10명의 근로자가 감당할 수 있다.현재 한국 공장에서 연간 50만 켤레를 생산하고 있고, 중국·베트남·미얀마에 있는 OEM 업체에 100만 켤레 생산을 맡기고 있다. 로봇을 활용한 자동 생산 시스템을 확대해 중국·베트남·미얀마 물량을 한국으로 가져올 계획이다."- 회사명과 같은 ‘트렉스타’라는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중국 공장을 가동할 때 제품 대부분을 OEM 방식으로 수출했다. 당시 수출이 98%가 넘었다. 하지만 우리 브랜드는 없었다. 바이어는 언제든 우리를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바이어를 ‘손님’이라고 부른다.그들은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OEM 업체를 찾으면 매몰차게 거래를 끊는다. 실제로 나이키 등 브랜드사에 제품을 공급하다가 하루아침에 공장 문을 닫은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더 이상 바이어에 따라 사업이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997년 자체 브랜드 ‘트렉스타’를 선보였고, 차츰 OEM 비중을 줄여 나갔다. 현재는 OEM 비중이 전체 매출의 5%에 불과하다."- 브랜드를 강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우리는 제품을 개발하고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할 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절대로 타사 제품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시장에 선보였다. 1994년 가죽이 아닌 소재를 사용한 경등산화(가벼운 산행이나 단거리 트레킹에 적합한 신발)를, 2005년에는 신발 끈을 와이어로 대체해 다이얼을 풀고 조이면서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코브라(KOBRA) 제품을 출시했다. 2010년 2만명의 발 데이터를 연구해 사람의 발에 최적화된 신발을 만드는 네스핏(NESTFIT) 기술도 개발했다.현재는 고객이 하루하루 신발의 색깔과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신발, 여름에 보다 더 시원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개발 중이다. 이런 R&D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트렉스타는 없었을 것이다." ▲ 트렉스타의 주요 제품들. /트렉스타 제공- 한국의 신발 산업은 디자인과 브랜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한국 신발 업체 대부분은 신발 디자인을 할 때 해외 유명 제품을 모방한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독창적인, 자기만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세계적인 신발 산업 전시회를 가면 한국 사람들은 제품 사진을 찍기 바쁘다. 제품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한국 신발 디자이너, 개발자를 디자이너가 아닌 사진사라고 비아냥거린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또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꾸준한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 상황을 제대로 봐야 한다. 국내 대부분의 신발 업체는 자금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돈이 없는데 나이키, 아디다스처럼 마케팅·광고를 할 수는 없다. 그들과 똑같은 브랜드 전략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렉스타의 경우 기술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2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중국 공장 철수와 관련이 있나."중국 공장을 정리하면서 발생한 손실이다. 중국 진출 초기에는 많은 이익을 냈다. 하지만 2000년 중후반부터 지난해까지 적자를 냈고, 초기에 벌었던 돈 대부분을 날렸다. 중국 공장을 운영하면서 총 5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 매출도 2015년 1038억원에서 지난해 631억원으로 2년 동안 39% 줄었다."OEM 사업을 하다가 자체 브랜드로 전환하면서 실적이 줄었다. 중국 공장 철수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16년과 지난해가 안 좋았다. 새롭게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올해부터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전체 매출의 15%가 발생하는데, 해외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핀란드 등 북유럽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고, 최근 독일 시장에도 진출했다. 국내에선 군, 관공서 추가 공급 계약을 했다. 매출을 다시 1000억원대로 끌어올릴 것이다."  <2018-09-02 조선일보>

세창정형제화연구소

왼팔로 만든 세상 단하나의 신발 2018.08.31조회57

이너스코리아 김규덕 대표

발상의 전환…친환경 ‘조립형 신발’로 세계 향해 달린다. 이너스코리아 김규덕 대표 2018.08.09조회154

이너스코리아 김규덕 대표- 아디다스 등 디자인 맡아 오다- 제품에 접착제 전혀 사용 않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발 개발- 소비자가 직접 신발 만들고- 1만 가지 넘는 색깔 활용해 - 취향 맞춰 다양한 연출 가능- 세계 3대 디자인상 등 휩쓸어- 미국 일본 등 수출 문의 쇄도 부산에서 접착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 조립 신발을 만드는 업체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부산 부산진구의 ㈜이너스코리아 이야기다.1996년 설립된 이너스코리아는 디자인 업체로 시작해 2014년부터 친환경 조립 신발 ‘케이아이 에코비(KI ecobe)’를 만들고 있다.어떻게 접착제를 쓰지 않고 조립식 신발을 만들까. 케이아이 에코비는 신발 밑창, 내부 부츠, 신발을 감싸면서 모양을 잡아주는 틀, 신발 끈, 깔창 등 크게 5개로 나누어져 있다.신발 밑창에 부츠를 넣고 신발 아래쪽부터 모양을 잡아주는 틀을 끼워 신발 끈을 묶으면 접착제 없이도 근사한 신발이 완성된다.지난 2일 부산 부산진구의 이너스코리아 본사에서 이 회사 김규덕(52) 대표가 케이아이 에코비 조립을 손수 보여줬다.김 대표는 “일반 신발은 장벽이 너무 높아 진입하기 힘들었다.대신 친환경 조립 신발은 어디에도 없는 아이템이라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친환경 조립 신발의 탄생 경남 밀양 출신으로 동명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는 1996년 디자인 업체 이너스코리아를 설립했다.부산 디자인 사업 1세대인 김 대표는 사업 초기 각종 디자인 사업으로 회사를 꾸렸다.특히 부산에서 특화된 신발 산업과 함께 아디다스, 리복 등의 브랜드 디자인을 주로 맡았다.김 대표는 “디자인만 가지고 사업을 하면서 부가가치가 제한적이란 것을 많이 느꼈다.그래서 창의적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상품화 해보고 싶었다”면서 “그때 신발 공장의 열악한 환경이 떠올랐다.디자인 사업을 하면서 자주 신발 공장을 다녔는데 작업 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요즘에는 신발 공장 작업 환경이 개선되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환기 시설조차 갖추지 않고 신발을 만드는 곳이 많았다.작업자들은 환기가 잘 안 되는 공장에서 본드 등 화학 성분을 다루며 하루 8시간 넘게 일했다.김 대표는 “내가 아무리 신발을 좋아해도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본드 냄새를 이렇게 많이 맡으면 나중에 골병들지 않겠느냐”면서 “접착제가 신발 공정에서 빠지면 자연스레 작업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처음부터 친환경 조립 신발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다.노력 끝에 탄생한 첫 제품은 ‘케이아이 엑스트랩 네오(KI xtrap neo)’로 라푸마 브랜드와 협업한 신발이었다.당시 신발 밑창과 중간 소재를 조립해 접착제를 절반 정도 쓰지 않았다.이 신발이 2015년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제품부문에서 최고상인 ‘Best of Best’를 수상하면서 김 대표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김 대표는 “기아나 LG 등 대기업만 받던 상을 우리가 받아 처음엔 놀랐다.이후 친환경 조립 신발이 세계에서 통할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세계가 인정한 케이아이 에코비 이너스코리아는 2015년 중국 푸젠성 산업디자인 대회에서 ‘케이아이 에코비’ 디자인만으로 대상을 받았다.디자인으로 먼저 인정받은 케이아이 에코비는 본격적으로 제품화됐다.이후 케이아이 에코비는 미국 IDEA 디자인 어워드, 독일 잇 어워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등 세계 3대 디자인상을 휩쓸며 승승장구했다.김 대표는 케이아이 에코비를 설명하면서 사람 중심, 재활용, 자기만족 등 3가지를 강조했다.그는 “우선 신발 제조 공정에서 접착제가 쓰이지 않다 보니 작업자들이 유해환경에 노출되지 않는다.또 신발 전체를 재활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여기에 소비자가 1만 가지가 넘는 색깔로 자신만의 신발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세계에 통할 것이란 김 대표의 예상도 적중했다.2017년 6월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 진출한 케이아이 에코비는 3만 달러(약 3300만 원)의 목표를 초과 달성해 6만6000달러(약 7400만 원)를 달성했다.미국 등 45개국에서 500여 명의 소비자가 케이아이 에코비를 구매했다.현재까지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수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김 대표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이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다.앞으로 아동용으로 친환경 조립 신발을 만들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힘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까스텔바쟉

최병오의 새 도전, '까스텔바쟉 신발' 2018.07.19조회207

캐주얼 신발 사업 나서 신발 디자인·제조사와 합작  까스텔바쟉 골프웨어 성공 후  리빙·잡화 이어 신발로 확장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사진 가운데)이 골프화 스니커즈 등 캐주얼 신발 사업에 새롭게 도전한다.2016년 인수한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까스텔바쟉’을 통해서다.내년 상반기 계획하고 있는 까스텔바쟉의 증시 상장(기업공개)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골프웨어·리빙·잡화 이어 신발도 패션그룹형지는 18일 국내 신발 전문기업 C&K무역, 미국 유통회사 JBJB글로벌과 함께 ‘월드와이드 신발 합작사 설립 조인식’을 열었다고 발표했다.조인식에는 최 회장과 정창곤 C&K무역 대표(왼쪽), 제이 백 JBJB글로벌 대표(오른쪽)가 참석했다.까스텔바쟉과 C&K무역, JBJB글로벌이 3분의 1씩 지분을 갖는 합작법인을 이달 말 설립하기로 했다.패션그룹형지는 에스콰이아를 인수해 구두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하지만 스니커즈 등 캐주얼 신발을 제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협약에 따라 까스텔바쟉은 골프신발, 스니커즈 등을 제작해 내년 하반기부터 판매할 예정이다.까스텔바쟉은 신발 상표권을 제공하고, C&K무역은 신발 제조 및 국내 일부 유통을, JBJB글로벌은 디자인 개발을 맡는다.또 미국 포틀랜드에 있는 유명 디자인 회사, 신소재 개발회사, 아웃솔(밑창) 회사 등 전문성을 갖춘 업체들과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최 회장은 “까스텔바쟉은 오랜 역사와 예쁜 디자인을 보유한 브랜드여서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신발 디자인 경력과 제조 능력이 탁월한 두 회사와 함께 멋진 디자이너 신발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이번에 합작법인에 참여한 C&K무역은 부산에 있는 신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전문회사다.스케이트보드화로 유명한 미국 DC슈즈의 신발과 레인부츠로 유명한 헌터의 부츠 등을 OEM 방식으로 제조하고 있다.중국과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운영 중이다.패션그룹형지 관계자는 “C&K무역은 제조력뿐만 아니라 국내 신발 멀티숍 등 유통망도 확보하고 있다”며 “까스텔바쟉 매장은 물론 C&K무역의 유통망을 활용해 국내 신발 사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대만 중국 등으로 영토 확대 까스텔바쟉은 해외 판매를 위해 국가별 유통 전문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계획이다.이미 올해 3월 대만 유통업체 킹본과 계약을 맺고 퍼시픽소고백화점, 한신백화점에 까스텔바쟉 골프웨어를 입점시켰다.대만의 킹본은 ‘피에르 발망’ 등 유명 패션 브랜드의 대만 판권을 가진 회사다.까스텔바쟉은 대만 진출 한 달여 만에 두 백화점의 골프웨어 매출 ‘톱3’에 들었다.패션그룹형지는 까스텔바쟉 골프웨어로 지난해 9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올 들어 리빙, 잡화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 11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까스텔바쟉 핸드백 디자이너로 석정혜 에스이오케이인터내셔날 대표를 영입해 가을·겨울 신제품 가방을 개발하고 있다.최 회장은 “현재 까스텔바쟉의 중국 유통을 담당할 파트너사와 계약 체결을 진행 중”이라며 “홈쇼핑 판매용 캐리어, 화장품 등 다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여러 회사와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패션그룹형지는 지난해 1조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덕통상 문창섭회장

부산 신발, 개성 찍고 러 건너 유럽까지 갈 겁니다_삼덕통상 문창섭회장 2018.06.28조회327

부산 신발이 개성공단을 거쳐 러시아 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을까? 부산지역 신발업체 삼덕통상 문창섭 회장은 지난 21~24일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 경제사절단으로 참석했다.문 회장은 유리트루트네프 부총리, 게오르기 칼라마노프 산업통상부 차관, 알렉산드르 크루티코프 극동개발부 차관 등과 만나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했다.또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장과 경제교류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삼덕통상 문창섭 회장 나흘간  러 국빈방문 경제사절단 참석 "남·북·러 경제협력 성사되면  완제품 러 철도 통해 유럽 진출" 문 회장은 "개성공단은 11년간 한국 기업들이 산업의 기반을 닦아놓은 곳이다"며 "이제는 기반을 잡은 만큼 개성공단을 통해 러시아로 진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해 경제사절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문 회장은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개성공단에 관심이 많다.2007년 북한 노동자 3000여 명을 고용할 정도로 대규모 투자를 하기도 했다.문 회장은 현재 한국신발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데 북한과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통해 부산신발업계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문 회장은 "한국, 북한, 러시아 3국의 경제협력이 성사되면 철도 운송이 가능해져 유라시아 대륙까지 배를 이용하는 것보다 20일 정도 시간이 단축돼 경쟁력을 높아질 것"이라며 "현재 멈춰있는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유라시아 대륙 진출의 전략적 거점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부산·경남 신발 산업을 위해서도 러시아 진출은 유리하다.현재 신발업체들은 인건비를 절감하고자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생산 공장을 이전했다.이 때문에 많은 원부자재를 동남아시아 현지나 중국에서 조달해 관련 산업이 많이 무너진 상황이다.몇몇 업체들은 품질 때문에 국내 제품을 쓰기도 하지만 막대한 운송비와 긴 운송시간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하지만 개성공단이 재가동될 경우 부산, 경남에서 원부자재를 싣고 개성공단에서 신발 완제품을 만들어 러시아 철도를 통해 유럽 시장으로 진출이 가능해진다.문 회장은 "신발산업의 최근 트렌드는 속도다"며 "생산 속도는 기획부터 운반까지인데 개성공단, 러시아 루트가 개척되면 유럽 시장까지 도달 시간이 줄어들어 부산 신발이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부산일보 2018-06-27>

거림

주식회사 거림 박상곤 대표_재구매율 높은 중년여성 신발 생산 … 홈쇼핑서 완판행진 2018.06.22조회358

1950년대부터 부산은 국내 신발 산업의 중심지였다. 당시 부산에서도 특히 부산진구에 신발 기업들이 몰려있었다. 삼화고무, 보생고무, 동양고무 등이 국내 신발 산업을 이끌었다. 아직도 부산진구 부암·당감동에는 크고 작은 신발 기업 수십 개사가 자리잡고 있다. 여성화로 잘 알려진 ‘주식회사 거림’도 이 중 하나다. 1988년에서 설립된 ㈜거림은 중년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신어봤을 유명 신발 브랜드를 만든다.   ㈜거림 박상곤 대표가 18일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본사에서 자사 여성화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1988년 설립된 ㈜거림은 부산 대표 신발제조 업체로 주로 여성화를 만들어 판매한다. 김종진 기자 15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거림 물류창고. 엔에스 모드(NS Mode), 플로쥬(FLOZU), 오즈페토(O‘petto) 등의 브랜드 로고가 찍힌 수천 개의 신발상자가 대형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모두 ㈜거림이 만든 여성화 브랜드로 국내 전역으로 나가는 제품들이다. 국내 각종 홈쇼핑에서도 완판을 기록할 정도로 40, 50대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양복 대신 위아래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거림 박상곤(36) 대표도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박 대표는 “신발을 만들다 보면 접착제 등 각종 화공약품이 옷에 묻을 수도 있어서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며 환하게 웃었다.■생산·영업 현장 직접 뛰는 대표                     부암동 ㈜거림 본사 사옥.㈜거림의 창업주는 박 대표의 아버지 박현수(60) 회장이다. 박 회장은 화승그룹의 전신인 동양고무 출신의 ‘신발인’이다. 박 회장은 신발업계에서만 40년 정도 몸담으면서 신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신발 박사다. 박 대표는 2009년 가업을 잇기 위해 ㈜거림에 입사했다.박 대표는 “아버지는 신발 부품이 수천 가지인데 모든 부품의 제조과정과 쓰임새를 잘 알고 계신다. 심지어 전문 협력사도 모르는 비법을 알고 있을 때 나도 놀란다”며 “이에 비하면 아직 10년 차인 나는 신발에 대해서는 걸음마 수준이다.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첫 입사 후 박 대표는 현장에서 3년 동안 일했다. 그곳에서 직원들과 어울리며 신발의 기초를 배웠다. 신발공장은 박 대표의 대학 전공과는 다른 분야였지만 어렸을 적부터 봤던 낯익은 공간이었다. 현장 생산직으로 일했던 박 대표는 그때 현장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다. 화공약품을 사용하다 보니 우선 낯선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다. 또 제조과정에서 신발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 온도는 100도를 훌쩍 넘어 더위와의 싸움도 함께 했다.박 대표는 “그때 신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환경도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아버지에게 직접 건의하며 개선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 6월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본격 경영에 나섰다. 지금은 아버지를 도와 ㈜거림의 전반적인 경영은 물론 홈쇼핑 및 국내 영업 부분을 직접 맡고 있다.■재구매율 높고 반품 안 하는 신발        ㈜거림에서 올 여름을 겨냥해 생산한 여성 샌들.박 대표는 ㈜거림의 신발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반품률이 다른 브랜드에 비교해 아주 낮다는 점이다. 홈쇼핑의 경우 소비자들이 신발을 배송받아 직접 신어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이때 타 브랜드는 반품률이 40~45%에 이르지만, ㈜거림의 신발은 30%를 밑돌고 있다. 홈쇼핑 측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특히 사이즈로 인한 반품률이 아주 낮다.박 대표는 “보통 소비자가 매장에서 신발을 신어보고 조금 안 맞으면 점원들로부터 ‘시간이 지나면 늘어납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발에 안 맞는 신발은 불편한 것이다”며 “억지로 신발을 신어서 질을 들이면 신발 본연의 모습이 사라진다. 우리 브랜드는 자체 노하우로 사람들에게 꼭 맞는 신발을 만든다”고 밝혔다.또 재구매율이 높다. ㈜거림의 신발을 신어보고 편안함을 느낀 단골이 많다. NS홈쇼핑 자료에 따르면 한 소비자는 ㈜거림의 신발 25켤레를 지속해서 산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표는 지난해 5월 해당 고객에게 직접 전화해 고마움을 표현하며 신발 선물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고객은 정중히 사양하며 그냥 좋은 신발 많이 만들어달라 부탁했다. 20켤레 이상을 구매한 고객들도 한두 명이 아니다.박 대표는 앞으로 아버지를 도와 ‘유명’ 회사보다 누구나 꿈꾸는 회사를 만들 계획이다. 패션을 하는 사람이면 꼭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박 대표는 “신발은 편안한 기능은 물론 보기도 좋아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패션 중 가장 만들기 복잡한 제품이다”며 “패션업계에서 신발을 잘 만들면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앞으로 액세서리, 의류 등 토털패션을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프로스펙스

공세진 프로스펙스 R&D센터장..."건강한 보행 돕는 진짜 필요한 신발 만들것" 2018.04.11조회350

공세진 프로스펙스 R&D센터장"(직립)보행이라는 건 가장 고도로 진화된 인간의 행동으로 보행패턴을 잘 분석하면 치매 같은 질환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보행을 돕는 스마트 슈즈를 만드는 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 LS네트웍스의 스포츠 신발 브랜드 프로스펙스의 공세진 연구개발(R&D)센터장(박사·사진)은 "올바른 보행습관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공 센터장이 선보인 스마트인솔과 스마트폰 앱을 통한 건강한 보행을 돕는 2세대 스마트슈즈는 신발이 의료기기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서울 한강대로 LS네트웍스 본사에서 만난 공 박사는 "지난해 출시한 1세대 스마트슈즈가 칩을 특정 스마트슈즈에만 삽입하는 것이라면 2세대는 인솔을 통해 다양한 신발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용자의 발 각도, 좌우 균형, 보폭, 속도 등을 측정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동해 전송된다"며 "전송된 데이터는 사용자 스스로 본인의 보행습관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바른 보행 습관을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특히 스마트아동화는 앱에서 보이는 걷는 형태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가 어떻게 걷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의 발에 적합하도록 앞볼을 넓게 했고 체중이 실리는 부위에 아웃솔을 보강해 가벼우면서도 안정성을 더했다.앞으로 스마트슈즈가 더욱 진화하게 되면 보행형태를 가지고 퇴행성 뇌질환도 조기 예측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관련해서 삼성의료원, 현대아산병원 등과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공 박사는 "뇌에서 하는 연산 능력이 떨어지면 보행패턴이 바뀐다"며 "치매나 파킨슨병 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건데 대개 10년 전부터 보행패턴에 이상이 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슈즈를 신고 일상생활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걷는지 쭉 모니터링을 해서 보행습관으로 전조증상을 예측하는 형태로까지 진화한다면 우리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생체역학을 전공한 공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다 2016년 프로스펙스 R&D센터로 이직했다.그는 지난 1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후 인 더 월드’ 2018년 판의 생체역학 및 헬스케어 분야에 등재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연구자다. 현재 국민대학교 체육대학 스포츠건강 재활전공 겸임교수, 한국운동역학회 이사, 대한 운동학회 이사, 한국 생리인류과학회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공 박사는 "직장의 안정성을 보장받는 연구원에서 프로스펙스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신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앞으로도 스마트슈즈 뿐만 아니라 신발 본연의 기능인 '발의 보호'와 '발의 운동성 강조'에 맞는 신발을 만드는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2018-04-05 파이낸셜뉴스>

수제화

브러셔 “‘신발의 본질’에 충실… 수제화 부활 이끈다” 2017.12.27조회655

수제화

이야기 공작소-신발의 도시 부산…그 속에 숨은 스토리 <6> 수제화에 바친 시간들 2017.12.27조회588

- 손으로 깎고 칼질하다 부상 일쑤- 작업장 연탄가스·본드냄새 고통- 고급수제화 다방 아가씨들 주문- 부산서 서울 진출 업체까지 생겨- 명절엔 주문 몰릴 정도로 초호황- 요즘엔 발이 특이한 사람이 찾고- 후배 양성이 잘 안될 정도로 위축- 돈벌이보다 '천직'에 위안 삼아1970년대 부산에서는 손으로 신발을 일일이 만드는 수제화(手製靴)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조상환(64)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그는 1974년 기술을 배우러 부산에 왔다가 수제화 제작의 길을 걸었다.    과거 수제화 제작과정은 기술자인 '선생'과 그 밑의 견습생들에 의한 도제식으로 이뤄졌다. 사진은 1974년부터 수제화 일에 종사하고 있는 조상환 씨. "당시에 주로 남포동과 서면 지역에 제화점들이 몰려 있었죠. 내가 일한 가게는 서면 '세븐틴'이라는 곳이었어요. 그때 제화점들은 신발 파트별로 선생이 여러 명 있었고, 그 선생 밑에 상·중·하 (등급별로) 견습을 두었습니다. 하견습에서 상견습까지 올라가는데 보통 3~4년 걸리고, 선생으로 불린 기술자가 되려면 7년도 빠르다고 했었죠. 20년 되도록 선생이 못 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조상환 씨의 수제 구두.제화점에 처음 하견습생으로 들어가면 목형 라스트(신발틀)에 갑피를 못으로 고정하는 일을 했다. 선생이 본드로 고정시키면, 못을 전부 뽑아내는 일을 하고 그 외에도 잔심부름을 했다. 중견습은 굽에다 가죽을 싸는 작업을 맡고, 상견습은 신발창을 오려 붙이는 걸 배웠다."넓은 판에다 규격을 맞춰서 그라인더로 밀고 가는 거죠. 지금처럼 쭉쭉 찍어내는 게 아니고 일일이 손으로 깎아서 만들었어요. 요즘은 신발 '징'도 사출해서 규격대로 나오지만, 그때는 전부 칼로 깎고 그라인더로 갈아서 만들었죠. 수제화는 칼질을 많이 하는데, 고무판이 무거워서 힘을 가해 자르다 보면 손을 잘 다쳐요. 통굽을 만들 때는 두꺼운 스펀지 같은 거를 장판지 위에 올려놓고 자르는데, 장판지까지 칼이 들어와서 째지기도 했어. 그렇게 다치는 건 예사였죠."여러 형태의 신발틀과 도구 등이 갖춰진 수제(手製) 제화점의 작업실.게다가 좁은 공간에 열댓 명이 쪼그려 앉아서 작업을 했다. 비좁은 틈새로 지나가기 위해 서로 등을 타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였다. 겨울에는 날씨가 춥다고 작업실 문을 꽉꽉 닫아 놓으면 연탄난로 가스 냄새에 시달렸다. 더운 여름철에 본드로 접착 작업을 할 때는 열을 가하고 선풍기 바람이 없는 방향에서 붙이느라 무척 힘들었다."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일명 '싸롱화'(고급 수제화)라는 게 유행했어요. 신발을 1차로 가봉한 걸 손님이 신어 보고, 원하는 부분을 수정해 납품하는 방식이라. 완전 맞춤으로, 제대로 된 수제화였지. 부산에서 싸롱화로 유명해져 서울까지 진출했던 '브라운 양화점'이란 곳이 있었어요. 그곳에는 '알렉산더'라는 전문 브랜드 부서가 따로 있었죠. 내가 거기에 잠깐 있었지만 나만의 기술로 신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26살 때 자립해서 나왔지. 그 시절 여화의 가장 큰 특징은 통굽으로, 다방 아가씨들이 주로 주문했어요."경북 안동이 고향인 박종준(가명·56) 씨는 어릴 때 고향의 양화점에서 심부름을 하며 신발 만드는 일을 처음 접했다. "그러다가 열 일곱 살 무렵에 가족과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동양고무 하청공장의 잡부로 일했어요. 그때 제품이 기차표 아동화였죠. 공장에서 신발 제품이 찍혀나오는 걸 보고 있자니 수제화 생각이 많이 났어요. 결국엔 내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나와서 여기저기 양화점을 돌아다니며 수제화 기술을 다시 배우게 된 거지요."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낸 수제 구두 제품.1980년대는 수제화 일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경제가 성장할 시기여서 명절 때가 되면 주문량을 맞추느라 무척 바빴다. 며칠 쉬지도 못하고 잠 자는 시간도 부족했다. 그때는 수제화 한 켤레를 제작하는데 보통 일주일이 걸렸다."과거 수제화 기술자들은 양화점을 옮겨다녀도 금방 소문이 나고, 한 다리 건너면 서로 아는 사이죠. 내가 멋대로 디자인하고 다른 양화점에 가면, 뒤에 후임으로 온 사람으로부터 뒷말이 나오기까 조심스러웠죠. 칭찬은 소문이 늦는데 나쁜 얘기는 빨리 퍼지잖아요."그는 부산에서 양화점을 운영한 지 24년 됐는데 주위의 양화점들이 많이 없어졌다며 안타까워 했다. 수제화를 하러 오는 사람이 적고 수입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박 씨는 그 사이 수제화 가게를 두 차례 접고 다른 분야 일도 했지만, 결국 수제화로 돌아왔다. 요즘 수제화를 찾는 사람들은 발이 좀 특이하거나 젊을 때부터 맞춰 신은 경우, 그리고 양쪽 발 사이즈가 다른 사례가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수제화 제작 과정에 쓰이는 공구.세월이 흐르면서 수제화는 대기업의 브랜드 신발과 인터넷 구매 추세에 점차 밀려났다. IMF 외환위기 전보다 수제화 생산량이 15%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수제화 제조기술을 배우려는 이들이 거의 없어 후배 양성이 잘 안 될 정도로 열악하다. 수제화에는 각 전문파트가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대체인력 구하기가 힘들다. 마치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바퀴 하나가 빠지는 거와 같다고 조상환 씨는 설명했다."그동안 안 해본 신발 디자인이 없어요. 내가 디자인한 대로 신발이 나오고, 간혹 학생들이 디자인 스케치를 해온 걸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죠. 처음엔 그냥 먹고 살려고 수제화 일을 했지만, 이젠 돈벌이보다 내 천직으로 생각해요. 수제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이죠." 국제신문 201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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